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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와 비교해서 본 <판타스틱 소녀백서>
2002-06-27

아, 10대여, 덧없는 실존의 장소여

라라 크로프트나 쉬렉도 나쁘지는 않지만, 올 여름 시즌 최고의 아이콘은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주인공 이니드나 <브라더>의 기타노 다케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이 글은 2001년 7월에 <빌리지 보이스>에 개재된 글이다-역주). 세상 만사가 불만스러운 이 괴짜 여신과 그녀의 액션 영화판 판박이라 할 만큼 비타협적이고 무지막지한 이 추방된 야쿠자는 모두 미국이라는 문화적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은 아웃사이더들이다.

대니얼 클라우즈의 원작만화에 대한 감독 테리 지와이고프(만화가 R. 크럼에 관한 다큐멘터리 <크럼>으로 널리 알려진)의 강한 감정이입을 읽을 수 있는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1965년 인도 뮤직컬의 열광적인 나이트클럽 음악과 함께 폭발할 듯 시작한다. 영화 전체에서 18살 소녀 주인공 이니드(도라 버치)의 유별난 취향을 이 장면만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다시 없지만, 보랏빛 립스틱과 뿔테 안경, 파란색 랩터 티셔츠를 입은 도라 버치의 모습 자체가 그녀의 취향을 시종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도라 버치는 <아메리칸 뷰티>에서의 변두리 선머슴 같은 이미지를 우쭐대는 10대 소녀의 표상이라 할 만한 익살스러운 이미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볼썽사나운 생김새의 이 여전사는 때로는 행진하듯, 때로는 뒤뚱거리며 사려깊게 새로운 연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안하게 매달린 그물침대같은 과도기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고등학교 졸업생 시절과 성인기 사이에 불안정하게 메달려 있는 그물 침대와도 같다. 이니드와 그녀의 단짝 레베카(스칼렛 요한슨)는 대학에도 가지 않고 50년대풍의 커피숍에서 죽 때리며 다른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TV를 보며 개인광고 낸 사람들을 조롱하고, 둘이 함께 마음에 두고 있는 편의점 직원 조시에게 들르거나 하며 허송세월하고 있다. 둘 모두 극도로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머저리들에 대한 전문가적 견지에서 보자면 사실 둘은 자신감 없이 움츠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세상에 대한 두 인물의 배타적 전선은 스트립쇼 문화에 동화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이의제기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즈의 기괴한 원작만화에서보다 계획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주인공 이니드에게는 진정성이라는 것을 찾아가는 또 다른 과정인 것이다.

원작만화가 “최선의 우정”이라는 문제에 유쾌하게 안주하고 있다면 즈와이고프의 영화는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하는(쉽게 말해 동네 극장에서 팝콘이나 팔고 있는) 주인공 이니드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이나 스승격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성인과 나누는 모호한 교분에 과감히 중심을 옮겨놓았다(사실 두 성인 캐릭터는 원작만화에는 없다). 낡은 78회전 레코드 수집가인 감독 자신과 같이 불운한 레코드 수집광인 시모어(스티브 부세비)와 이니드가 억지로 들어야 하는 여름학기 수업의 거만한 미술선생 로베르타(일레나 더글러스)가 그들. 로베르타가 고급 문화의 권위를 방어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시모어는 대중문화 수용자들의 순수성과 절망감의 상징이다.

이니드같은 사람은 보지 않을 영화

사실 신랄하기 그지없는 이 영화를 실제로 주인공 이드니 같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을 것이다.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언뜻 무심하게 만들어진, 시각적으로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 영화다. 단조로운 원색 위주의 화면구성과 대칭적 화면구도는 눈에 잘 들지도 않을뿐더러 삽화적인 연기 역시 대부분 배우 자신들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성질 사나운 만화가 크럼과 못지않게 유별난 그의 가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수년을 보낸 바 있는 즈와이고프 감독은 자신이 배우에 관한 한 과도하리만치 민감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배역을 택하는 것이 관습이라고 할 만한 부세미와 더글러스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독특한 느낌을 전달한다면 16살의 요한슨은 다소 정형화된 버치의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일 것이다.

영화 <크럼>에서 자신의 화면과 크럼의 만화 작품을 병치시켰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즈와이고프 감독은 <판타스틱 소녀백서>에 옛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의 의식을 불어넣음으로써 사회적 통념과 올바른 규범이라는 것들의 우둔함을 통렬히 공박하고 있다. 주인공 이니드는 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지내는 타고난 만화가인데 그녀의 그림 속에 베어 있는 크럼적인 느낌은 실제 그 그림들이 크럼의 십대 여동생인 소피아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로베르타는 애초에 이니드의 만화들을 폄하하지만 결국 나중에 그녀의 재능을 깨닫는다. 실제로 이니드는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예술가적 자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시모어도 마찬가지인데, 반대로 이니드는 시모어의 진가를 인정한다. 이니드는 골동품 소품들의 성전과도 같은 시모어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낡은 레코드와 30년대 수집품들 컬렉션에 압도되어 “여긴 정말 제 꿈속의 방 같아요”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당신을 죽여서라도 이것들을 가지고 싶어요”라는 이니드의 말에 부세미는 “그럼 죽여줘”라고 유쾌하게 대답한다.

대중문화의 변증법적 선언문

시종 세상에 대한 적대적 톤을 유지하면서, 이니드와 레베카는 “???짜들과 정신나간 사람들, 그리고 패배자”들에 기꺼이 자신들을 동일화시킨다. 가히 대중문화의 변증법적 선언문이라고 할 만한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이상화된 십대 소녀들과 동정이 갈 만큼 무능한 중년 사내들의 세계를 화면 속에서 구축해내고 있다(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일한 부모인 이니드의 소심한 아버지는 밥 발라반이 맡았는데 정말이지 남에게 해 따위는 끼칠 수 없는 형상이다). 냉담한 레베카에게 그녀가 시모어에게 느끼는 매력을 설명하면서 이니드는 그가 “정말이지 멍청한 촌닭이라 너무 멋있어”라고 말한다. 이니드는 그녀의 성적 호기심을 마침내 시모어와의 데이트로 승화(?)시키는데 영화에서 가장 웃기고 기발한 이 장면에서 그녀는 시모어에게 자기를 성인용품 가게로 데려가달라고 강요한다. 기괴한 성기구들로 가득 찬 그곳의 도발적 분위기에 이니드는 “하느님 맙소사, 여긴 완전 전쟁터 같아”라고 외친다.

영화 속에서 클라우즈의 원작만화가 가지고 있는 매혹은 다소 가라앉은 반면, 감독 즈와이고프 특유의 느낌이 부각되고 있다. 이니드는 예민한 멍청이가 상상할 수 있는 고교 시절 최고의 여자친구감일 것이다. 영화의 전반을 통해 다양한 판타지들이 예기치 않은 결과들과 충돌하는데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성장기의 브리콜라주(도구를 닥치는 대로 써서 만든 미술 형태가 만들어내는 페이소스가 흘러 넘친다-역주) 때문에 영화 속에 가득 들어찬 여러 가지 사물들은 단순한 서브 텍스트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니드는 시모어의 소장품 속에서 발견한 흑인 얼굴의 ‘쿤치킨’ 포스터를 미술 수업 시간에 자신이 발굴해낸 미술품으로 제출하는데 이를 통해서 즈와이고프는 만화계에 고질병적인 검열과 스테레오타입의 문제를 제기한다(하지만 그의 지적은 옳은 반면, 그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사실 적절하지 않다. 이니드라는 캐릭터는 그 이미지가 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 배우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유대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나치 기념품이나 디즈니의 <꼬마 돼지 삼형제>에서 삭제된 반유대주의적 스테레오타입 따위를 다루는 것이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십대 코미디물은 상업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할리우드의 몇 안 되는 장르이고 지난 수년간 <러쉬모어> <일렉션> <딕> 등과 같은 최고의 성공작들이 만들어져왔다. 중요한 점은 <판타스틱 소녀백서> 역시 이 장르에 속한다는 점이다.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성장기라는 것이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성장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포착한 영리한 영화다. 때문에 명확한 결말없이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도 훌륭한 선택일 것이다. 제목(원제 Ghost World)이 말해주듯이, 이 영화는 실존의 장소,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존의 상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번역 권재현----

(<빌리지 보이스> 2001. 7.?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미국문화사의 맥락에서 본 <판타스틱 소녀백서>

▶ 원작만화와 비교해서 본 <판타스틱 소녀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