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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간의 사랑 소재로 한 드라마 <로망스>
2002-07-03

용두사미의 판타지

MBC의 수·목 미니시리즈 <로망스>가 끝났다. 인기가 높았고, 그만큼 말도 많았던 이 드라마는 지난 6월27일 김재원과 김하늘이 결혼하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마지막회 시청률이 35%에 이르렀으니 제작진으로서는 흐뭇할 만도 하다. <로망스>는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중계로 인해 여타의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에서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30%대의 시청률을 유지했다.

주연을 맡은 김재원과 김하늘의 개인적 매력도 드라마의 인기에 한몫을 했지만, <로망스>의 인기는 사실 ‘여선생과 고교생의 사랑’이라는 소재의 파격성이 더 눈길을 끌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제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는 같은 MBC에서도 감우성과 채림이 주연을 했던 <안녕 내 사랑>이 있었고, 그외에도 <베스트 극장>이나 <드라마시티> 등의 단막극에서 간간이 방송되곤 했다. 따지고보면 이제는 추억의 영화에 속하는 <진 브로디의 청춘>이나 <차와 동정> <날이 새면 언제나>도 선생님 또는 사감 선생의 부인과 학생의 사랑이 소재였거나 주요 사건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제간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이해나 애정보다 유교적인 윤리와 예절을 더 엄격하게 따지는 우리의 문화 속에서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은 언급 자체가 일종의 금기였다. 그래서 사제간의 사랑을 그린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도덕적으로 원만한 결말을 추구했다. 처음에는 이성으로 느꼈던 사랑이 스승에 대한 존경과 흠모로 ‘발전’(?)해 마지막에는 예전과 같은 적당한 ‘안전거리’를 두는 관계로 돌아가는 그런 식이다.

그런데 <로망스>에서는 처음부터 사제간의 ‘안전거리’도, 사랑을 존경으로 치환하는 ‘양성화’ 과정도 없었다. <안녕 내 사랑>에서 시도했던 대담한 사랑 이야기는 아예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채림의 애정공세에 당황해하던 선생님 감우성의 모습이 <로망스>에서는 제자의 구애에 화답을 하고 교직을 떠나는 김하늘의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교총과 같은 교사단체에서 드라마 기획단계부터 우려와 항의를 했던 것도 이러한 파격성 때문이다. 여관에 함께 투숙하는 신을 비롯해 학교 실험실 키스신, 김하늘이 학생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는 장면 등은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너무한다”는 교사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젊은 시청자에게는 지나치게 파격적이어서 현실과 괴리감마저 주는 이런 상황들이 오히려 더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로망스>는 드라마 소재의 폭을 넓힌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이런 평가는 선뜻 내리기가 어렵다. <로망스>는 표면상으로는 여선생과 고교생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실질적인 드라마의 복선과 사건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김하늘과 김재원의 집안 내력이 갖는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비극적 연인, 드라마 <학교>를 연상시키는 김재원의 고교 시절 방황, 그리고 <별은 내 가슴에>나 <토마토> <미스터 큐> 등과 같은 일련의 트렌디드라마에서 봤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적 성취. 음식으로 치면 파격적인 재료의 애피타이저로 눈길을 끈 뒤에는 중식, 한식, 일식이 마구 뒤섞여 나오는 모양이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적 재미를 두루 섭렵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라는 점에서 보면 심하게 말해 ‘소재 짜깁기’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훌쩍 시간을 뛰어넘어 두 사람이 성인이 되어 재회하는 상황부터는 뒤섞임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 우연의 연속으로 얻게 되는 사업의 성공, 부모의 죽음에 얽힌 숨겨진 비밀, 정성환으로 상징되는 선택받은 부와 기회의 소유자 등 만화적인 상황과 캐릭터의 연속이다.

물론 만화적인,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답답한 현실에 뿌리를 둔 리얼리즘보다는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꿈같은 판타지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신세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서 진실로 기대했고, 바랐던 것이 그런 닳고 닳은 상업적 드라마트루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솔직히 <로망스>의 후반부터 마치 어떤 눈속임에 속아 물건을 잘못 산 것 같은 억울함을 느꼈다. 이런 분함은 30대 중반의 나만 느끼는 것일까?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port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