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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일더 감독의 <하오의 연정>
2002-07-03

그녀의 뒤를 밟다

Love in the Afternoon1957년, 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오드리 헵번EBS 7월7일(일) 낮 2시

“이 남자는 정말 최상이야.” 소문으로만 듣던 플레이보이가 있다. 그는 흰색 양복을 즐겨 입고 여자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대륙을 넘나들길 두려워 않는다. 심지어 자살 소동을 벌인 이도 있다.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소문은 눈덩어리처럼 커져만 간다. 순수한 여성이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처녀다. 그녀가 전설의 플레이보이를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은 위트있다. 화면은 검은 실루엣으로 남자의 뒷모습을 비춘다. 가까이 다가가도 그의 얼굴은 흐릿하게만 보인다. 아뿔싸, 멋지긴 한데 늙은 티가 역력하다. 요정 오드리 헵번이 노신사 게리 쿠퍼를 조우하는 순간이다.

<하오의 연정>은 동명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것. 첼로를 공부하는 아리안느는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 아리안느의 아버지는 사립탐정으로 남들 뒷조사를 벌이며 다닌다. 아버지의 서류를 몰래 훔쳐보던 아리안느는 플레이보이로 소문난 플래너건이라는 부호가 살해될 위험이 있음을 알게 된다. 플래너건을 만난 아리안느는 재치있게 위기를 넘기도록 도와주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데이트를 즐긴다. 플래너건은 아리안느의 사생활을 알기 위해 탐정을 고용하는데 바로 그녀의 아버지다. 딸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는 플래너건에게 딸의 곁을 조용히 떠날 것을 부탁한다.

<하오의 연정>은 빌리 와일더 감독작이다. <선셋 대로>(1950)를 만든 뒤 빌리 와일더 감독은 영화사에 오를 걸작을 연출했다는 칭송을 들었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녹여내기엔 그의 비관주의와 냉소적 유머가 어울리지 않았던 것. 흥미롭게도 와일더는 이후 코미디로 방향을 바꿨다. <사브리나>와 그리고 <하오의 연정>은 1950년대 중반에 빌리 와일더가 연출한 코미디다. <하오의 연정>은 특히 <사브리나>와 비슷한 맥락인데 부유한 계층의 남자, 그와 사랑에 빠지는 여성이라는 구도는 똑같다. 영화는 해외를 무대로 하며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는 당시 대중의 기호에도 잘 맞는 것이었다. 빌리 와일더의 영화는 평이한 코미디에 그치진 않는다. 와일더는 대중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자신의 독특한 뉘앙스를 영화에 담곤 했다. 평론가들은 빌리 와일더의 스타일을 “대중적 어법으로 풀어낸 세련된 비관주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하오의 연정>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의 사생활을 알기 위해 뒷조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우습게도 그것은 상대의 부친을 사립탐정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피어나는 의심과 불신이라는, 빌리 와일더가 즐겨 사용했던 모티브가 담겨 있는 것. 와일더는 쓸 만한 장르영화를 만드는 법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