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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함께 인기 모은 패러디 영화포스터
2002-07-04

한국, 압박왕 되다

요즘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어떤 기사를 읽어도 월드컵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축구가 이토록 전 국민을 미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도 축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칼럼니스트’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된 계기 중에는 일하는 회사가 광화문, 그것도 동아일보사의 전광판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에 있다는 사실이 큰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다. 건물의 꼭대기인 20층에서 TV를 보거나 전광판을 보며 응원을 하다보면, 창 밖으로 우리 은 악마들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천혜의 환경이 축구에 빠져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꿈쩍도 하지 않는 붉은 악마들의 모습이 의연해 보이기까지 했던 미국전을 볼 때는,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정말 그 순간 그곳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했을 정도다.

각설하고, 이번 월드컵의 붉은 악마 열풍을 다룬 수많은 언론 기사와 논평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PC방 등 어둡고 퀴퀴한 공간에서 벗어나 전정한 광장으로 나섰다는 점을 지목한 기사였다. 그 기사는 인터넷에 빠져 자폐증적인 증상을 보이던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는 장면은 가히 감동적이라고 전했을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월드컵 기간에 인터넷이 썰렁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젊은 네티즌들은 월드컵의 열정을 공유할 최상의 매체로 인터넷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 동계올림픽에 이어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고한 트렌드가 되어버린 영화포스터 패러디다.

중국과 미국 선수들의 반칙과 할리우드 액션으로 인해 연거푸 금메달을 놓치자, 이에 격분한 네티즌들이 영화포스터들을 활용해 패러디 포스터를 선보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 오노와 라자준의 모습을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포스터에 집어넣어, <나도 양심이 있었으면 좋겠다>로 바꾼 것이나 <반지의 제왕> 포스터에 오노, 리자준 등의 얼굴을 넣은 <반칙의 제왕> 등이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 이 밖에도 두 사람을 등장시킨 패러디 포스터에는 <한국의 적> <반칙의 달밤> <금메달 습격사건>, ‘개최국의 음모는 시작되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던 <2002 로스트 메달즈> 등이 있었으며, 리자준을 전면에 내세워 ‘29살 반칙말고는 궁금한 건 없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던 <자준이를 부탁해> 등도 보는 사람들에게 쓴웃음을 유발시켰던 대표적인 영화포스터 패러디들이었다.

그 당시 그런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환호했던 네티즌들은 한국 축구가 예상 외의 선전을 계속하자, 다시 영화포스터 패러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당했다’라는 억울함을 조롱의 형태로 나타냈던 올림픽 때와는 달리 ‘우리는 해낼 수 있고, 해냈다’라는 자랑스러움이 담긴 패러디들이 주로 선보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부 소수에 의해 만들어져 배포되었던 지난번과는 달리, 상당히 다양한 네티즌들이 직접 영화포스터 패러디를 만들어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화제를 몰고온 대표작들로는 ‘절대 무공의 한국팀이 온다’를 내세운 <압박축구>, 히딩크 감독의 환한 웃음이 걸작인 <행복한 히딩크>, 안정환·이천수·황선홍을 등장시킨 <한국, 압박왕 되다>, 안정환에게 살짝 기대는 히딩크의 모습 위로 ‘축구 하니까 참 좋다. 첫 진출, 그 벅찬 두근거림’이라는 문구가 살짝 얹혀 있는 <내마음은 축구>, 이천수의 앳된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로 비쳐진 가 있었다.

이런 패러디의 등장과 인기는 한 정신과 전문의의 지적처럼 ‘해학적인 투사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영화포스터가 갑작스럽게 패러디에 애용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전 국민들이 모두 익숙한 그림이나 포스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영화포스터만큼 전 국민에게 익숙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에 선보인 패러디들의 대부분이 큰 주목을 받았던 한국영화의 포스터를 활용했다는 점은, 한국영화의 인지도 및 흥행성적이 외국영화들을 뛰어넘는 현실의 정확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성공적인 패러디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본 자체에 일종의 메시지가 있어 그것을 뒤틀어야 하는데, 영화포스터만큼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이와 함께 영화포스터들의 이미지 파일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영화포스터 패러디의 전성시대를 연 중요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

→ 영화포스터 패러디는 동계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 <행복한 장의사>를 패러디한 <행복한 히딩크>.

→ 이천수 선수의 앳된 얼굴이 인상적인 .

→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월드컵 버전 <한국, 압박왕 되다>

→ 월드컵 패러디의 정수라 할 만한 <내마음은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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