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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출연한 중국 무용가 진싱
2002-07-10

매일 한 군데씩 다쳐가며 찍었죠

스포트라이트가 짠한 무대에 올라서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 그대로 ‘금별’이 된다. 조선족 출신 중국 무용가 진싱(金星). 무용계에선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그녀가 과연 스크린 위에서도 스타가 될 수 있을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의 후시녹음을 위해 7월1일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 녹음실을 찾은 진싱은 “아니,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으면 상하이로 올 것이지…”라며 특유의 애교섞인 한국어를 구사한다. 6월 중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예술축제 ‘In Transit’에서 공연을 가졌고, 뒤셀도르프와 뉘른베르크, 파리를 들렀다 상하이를 거쳐 서울로 들어왔지만, 이날 그녀의 녹음에 든 시간은 2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장시간의 여행으로 지친 탓에 짜증을 낼 만도 하지만, 태도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액션훈련에 돌입한 2000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 자신이 등장하는 분량의 촬영을 모두 마칠 때까지 “매일 한 군데씩 다쳐가며” 찍었던 이 영화에 진한 애착을 갖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진싱은 <성소>에서 주요 배역 중 하나인 ‘라라’로 출연한다.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를 연상케 하는 여전사 라라는 성소를 구하려 분투하는 주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인물. 그녀는 라라를 연기하면서 와이어에 매달려 총싸움을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를 맹렬하게 추적하는 등 고난이도 액션을 펼쳐야 했다. “아홉살부터 군대 가무단에서 쿵후나 총기사격 등을 훈련받았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았어.” 어릴 적부터 가족을 떠나 지내왔던 탓에 존댓말, 반말이 뒤섞인 한국어(그러나 듣는 이를 전혀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를 써가며, 진싱은 쾌활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2000년 자신의 삶을 담은 장위안 감독의 다큐멘터리 <진싱파일>이 상영되는 전주영화제를 찾았다가 장선우 감독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재밌을 것 같아” <성소>에 출연하게 됐다. “장선우 감독이 문제 감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 문제가 있으니까 재밌잖아요.” 진싱은 <발열천사>라는 일본영화 이후 배우로선 두 번째로 출연한 이 영화가 자신의 주종목인 무용과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무한한 자신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데선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공간이 무대건 스크린이건 자신의 금별을 반짝일 자신이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28년 동안 남자로 지내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했으며,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태생적 조건을 가진 그녀에게 정체성 혼란은 없을까. “한때 고민을 했지만, 미국으로 유학간 뒤 객관적인 눈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때 결론내렸어. 나는 ‘유니버설 시티즌’이고 ‘아시안 레이스’라고.” 입양한 두살배기 아들 두두 또한 ‘세계시민’과 ‘아시아민족’임을 느끼게 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전세계를 함께 돌아다닐 것이라고 즐겁게 말하는 진싱의 ‘수다’는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글 문석 ssoony@hani.co.kr /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