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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세계 첫 시사
2002-07-16

“Oops, Austin is Back!”과연 여름이 맞는지 의심스럽도록, 런던의 7월은 쌀쌀하기 짝이 없었다. 흐린 하늘은 수시로 비를 흩뿌리고, 늦가을처럼 서늘한 바람은 반팔 차림을 무색게 하는, 셜록 홈스의 추리극에 어울릴 듯 음산한 런던의 악천후. 런던 날씨의 변덕스러움에 익숙한 사람들은 바바리와 재킷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고, 이를 미처 예상치 못한 일부 관광객이나 체감온도에 아랑곳없이 멋을 낸 일군의 젊은이들만이 얇은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얇은 차림의 사람들이 많은 시내 중심가, 에로스 동상이 서 있는 피카딜리 서커스부터 레스터 스퀘어로 이어지는 길목은 런던 문화의 심장부라 할 만하다. 고급 쇼핑가와 대형 레코드점, 각종 뮤지컬 및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가가 늘어선 이곳에, 대형 영화광고물을 내건 멀티플렉스도 자리잡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개봉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부터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역습> <레지던트 이블> 등의 포스터가 곳곳에 보이니, 블록버스터들이 경합을 벌이는 분위기에서 여름이 조금 느껴진다. 7월7일 저녁 7시30분, (적어도 영미권에서는) 이들 블록버스터 대열에 동참을 앞둔 또 하나의 기대작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Austin Powers in Goldmember, 이하 <오스틴 파워3>)의 첫 시사회가 레스터 스퀘어 부근 샤프츠베리가의 오데온 코벤트가든에서 열렸다. 3년 만에 찾아온 오스틴 파워의 세 번째 황당무계한 모험담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특별 초대된 일반 가족관객이 좌석을 남김없이 메웠다. 상영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부터, 객석은 다시 한번 마음껏 웃어젖힐 만반의 채비를 차리듯 숨을 죽였다. 70년대 디스코타고 귀환한 오스틴

1편과 2편이 각각 90년대와 60년대를 오갔다면, 3편의 주무대는 디스코 리듬이 넘실대는 70년대다. 오스틴 파워는 미니 미와 함께 우주로 떠났다가 돌아온 닥터 이블을 체포한다. 트랙터 빔을 개발함으로써 미다스 행성을 녹여 지구를 물바다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음모를 막기 위해서다. 오스틴은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게 되지만, 경사스러운 날 정작 축하해줘야 할 아버지 나이젤이 보이지 않는다. 상심한 채 미녀들과 시끌벅적한 축하파티를 벌이는 오스틴에게 날아든 비보. 아버지가 골드멤버라는 악당에게 납치됐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골드멤버는 닥터 이블의 새로운 파트너. 골드멤버를 찾고 아버지를 구하려면 1975년의 디스코 클럽 ‘스튜디오 69’로 가야 한다. ‘스튜디오 69’에서 잠복근무중이던 옛 파트너 겸 연인 폭시 클레오파트라와 재회한 기쁨도 잠시. 오스틴과 폭시는 나이젤을 납치해간 골드멤버와 탈옥한 닥터 이블을 쫓아 도쿄의 이블 기지로 향한다. 속편인 만큼 <오스틴 파워3>는 전작에서 확보한 인물들의 친숙함과 웃음의 금맥을 바탕으로 자기 패러디를 서슴지 않으며, “더 크게, 더 낫게”(the bigger, the better)를 주문으로 삼아 캐릭터와 스펙터클을 보강했다. 우선 오프닝만 해도 그렇다. ‘유타주 어딘가’라는 자막과 함께 갑작스레 등장한 새규어의 질주. 섹스를 의미하는 속어로 이미 전작들을 통해 이 시리즈의 유행어가 된 섀그(shag)를 응용한 이름의 자동차가 화면을 가르면, 황토색 암벽이 펼쳐진다. 오토바이를 탄 여성과 이들을 쫓는 헬리콥터. 새규어에 타고 있던 오스틴은 슬로모션으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헬리콥터를 향해 총알을 날린다. <미션 임파서블2>의 패러디겠거니 하고 넘어가려는 순간, 헬멧을 벗는 두 남녀…?! 관객에게 깜짝 선물로 남겨 달라는 제작진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더라도 스포일러임이 분명한 탓에 다 밝히긴 어렵지만, 할리우드 스타들과 내로라 하는 감독이 카메오로 합세한 이 영화 속 영화장면은 오스틴 파워의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문을 폭소로 열어젖힌다.녹슬지 않은 패러디와 농담

오스틴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는 일종의 자기 패러디로 천연덕스럽게 닻을 올린 영화는, 여전히 음악과 춤과 드라마의 버라이어티 쇼에 가깝다. 오스틴은 촬영장의 스탭들을 백댄서 삼아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으로 춤추고, “이 영화는 바로 이 사람에게서 모조를 얻는다”며 영화음악에 참여해온 퀸시 존스를 소개하더니, 리허설중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마주쳐 한바탕 대결을 벌인다. 가슴에서 총알을 발사하는 브리트니를 처치하고 “Oops, I did it again, Baby”라며 돌아서는 장면은 <오스틴 파워>의 엘리자베스 헐리와 브리트니의 노래 제목을 비튼 유머. 전작들은 물론 온갖 영화와 음악, 스타, 광고 등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패러디와 패스티시는 이 시리즈의 장기이기도 하다. 이같은 장기는 새로운 인물 구성과 70년대로의 귀환이란 설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야기의 새로운 핵심으로 등장하는 나이젤은, 오스틴 파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60년대 영국 스릴러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파머의 재현. 마이크 마이어스는 실제 파머를 연기했던 영국 배우 마이클 케인에게 나이젤 역을 부탁함으로써, 스타 카메오들이 그러했듯 그 자신의 이미지를 교묘히 변주한 웃음을 제공한다. 디스코를 좋아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탄 채 ‘스튜디오 69’를 휘젓는 골드멤버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되살려낸 폭시 클레오파트라는 70년대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오마주.

R&B 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보컬인 비욘세 놀즈가 연기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섹시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여전사에 잘 녹아들었다. 닥터 이블과 미니 미, 스콧, 넘버2, 팻 배스타드 등이 전편에서 눈에 익은 얼굴로 친근함을 준다면, 신나는 디스코 무대에서 클럽 가수로 화려하게 등장하는 폭시와 골드멤버는 번쩍이는 의상, 조지 클린턴의 쿵짝거리는 리듬과 더불어 70년대 스타일에 대한 향수를 보탠다. “마이크 마이어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대중문화의 변화를 감지하는 바로미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1년 반 전에 각본을 구상할 때, 이유는 모르지만 75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는데 영화가 개봉될 때가 되니 디스코 붐이 다시 일고 있다.” 2편과 3편의 프로듀서 존 라이언스의 말대로,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대중문화에 대한 해박한 취향과 재해석에는 마이크 마이어스의 공이 크다.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같은 쇼와 <웨인즈 월드> <나는 도끼부인과 결혼했다> 등의 영화에서 코미디 감각을 다져온 마이어스는, 이 시리즈를 창조한 수장. 우드스탁과 퀸 등 팝음악에 대한 애정어린 패러디로 웃음을 끌어낸 <웨인즈 월드> 1, 2편에서 대중문화란 재료를 농담과 함께 버무려냈던 그는, 96년 <오스틴 파워> 시리즈로 더욱 본격적인 요리에 나섰다. 제임스 본드 등 그가 좋아했던 60년대 스파이영화에서 희화화되고 과장된 오스틴 파워의 캐릭터를 구상했고,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출신의 작가 마이클 매컬러스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장편 연출 경력이 거의 없는데다 실험적인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제이 로치의 시나리오 해석을 높이 사 감독으로 발탁한 것도, 결국 그 팀 그대로 <오스틴 파워 제로>를 탄생시킨 것도 그의 고집이다. 무엇보다도 성적인 것에 관심이 쏠려 있고 멍청해 보이는 오스틴 파워의 느슨하고 분방한 매력을 수십가지 표정에 담는 그의 과장된 캐릭터 연기는 이 시리즈의 진정한 모조라 할 만하다. 전편에서 이미 오스틴과 닥터 이블, 팻 배스타드의 세 사람을 맡았던 그는 <오스틴 파워3>에서 골드멤버까지 1인4역을 소화해냈다. 더이상 <오스틴 파워>는 없다?

그 밖에 투항하려는 미니 미를 자루에 넣고 사정없이 휘두른다든가, 스모 선수가 된 팻 배스타드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식의 과장된 슬랩스틱, 미니 미와 오스틴 파워가 짝을 이룬 절묘한 그림자 소극처럼 성적인 풍자와 화장실 유머까지 넘나드는 유머의 다채로움은, 원색적인 색감만큼이나 오색찬란한 웃음을 선사한다. “때로 어떤 완고함을 깨기 위해 불경스러워지기도 한다”는 감독 제이 로치의 말처럼, 모든 것을 희화화시키면서 웃어버리는 것. 네덜란드식 영어를 쓰는 골드멤버와 네덜란드에 대한 나이젤의 이유없는 적대감을 동시에 웃음거리로 삼아버리는 <오스틴 파워3>는, 경직된 진지함보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는 웃음이 솔직하고 즐겁다는 이 시리즈의 철학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결코 2, 3편을 만들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는 <오스틴 파워 제로>가 5300만달러를 넘는 준수한 성공을 거두고, <오스틴 파워>가 2억달러 이상의 대성공을 거두며 3부작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망가지도록 적나라하게 웃어보자는 능청맞은 제안이 먹힌 덕분 아닐까. 세 번째 이야기에 이르는 동안,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제작비는 1700만달러에서 3300만달러, 다시 6300만달러로 늘어났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오스틴 파워3>란 이름만으로도 카메오에 응할 정도라니, 시리즈의 인지도도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규모와 스펙터클을 키우는 게 늘 이야기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닥터 이블과 오스틴의 대결구도를 과장된 가족적 감상주의로 무마한 결말을 보자면 어쩐지 시리즈의 완결편 같은 맥빠진 여운이 남는 것도 사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직 속편 계획이 없다는 <오스틴 파워> 시리즈가 이어질진 알 수 없지만, 적은 예산과 기발한 재기의 초심을 잃고 비대해지는 것보다는 전편을 능가하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제작진의 대답이 오히려 믿음직하다.런던=황혜림 blauex@hani.co.kr▶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감독 제이 로치 인터뷰▶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배우 마이크 마이어스 인터뷰▶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배우 마이클 케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