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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눈물나는`제작일지(3)
2002-07-19

NG인지 OK인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 에라, 큰소리로 OK

CG 분량만큼은 <스타워즈>?

>> 2002년 5월21일

비상이다! 사운드가 빠져 있는 편집본이긴 하지만 다들 너무 지루하다는 반응이다. 기대를 많이 하셨던 강우석 감독님도 와서 보신 뒤 빨리 보충촬영 준비하라고만 하고선 자리를 뜬다. 다들 침울한 분위기다. 소스를 집에 들고 와서 비디오로 다시 보지만, 여전히 재미가 없다. 그런데 내 옆에서 본 마누라 은희만 재밌다고 한다. 은희가 날 많이 사랑하긴 하나보다. 뭐가 문제일까. 정우하고 머리를 맞댄 뒤, 관수 형과 일정을 조정한다. 대강 꼽아도 적어도 7회 촬영이 필요하다. 어쨋든 이 엄청나고 참혹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제발 잘돼야 할 텐데.

>> 2002년 5월28일

보충촬영 분량이 꽤 많다. 승우 선배가 화장실에서 쫄따구들한테 표를 뺏고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도 너무 코믹하게 그려진 것 같아 진지하고 다급한 버전으로 재촬영했다. 기관실에서의 격투장면은 물론이고, 좀더 사실적인 리액션 장면을 끼워넣기 위해 철곤과 용갑의 바스트숏도 새로 찍었다. 한두번 나가서 ‘땜방’하고 오는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은 다 메우고 돌아올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적, 재정적으로 조력해준 분들이 고맙다. 특히 짜증날 법도 한데, 아무 불만도 털어놓지 않는 스탭들이 눈물나도록 고맙다. 촬영 중반 이후부터 완전히 페이스를 되찾은 승우 선배도 고맙다. 술을 못 먹는다는 것이나, 촬영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도망쳐서 친해지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 2002년 6월4일

보충촬영이 끝났다. 그러나 제대로 찍었는지 알 수 없다. 하긴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편집에 들어가기 전에 고임표 기사님이 귀띔해준다. 새로 찍은 장면을 끼워넣다보면 적어도 30분 정도를 들어내야 한다고. 그리고선 대수술을 하다보면 배우 중 누군가는 피를 본다고 했다. 조연이 많은 영화라 불만을 털어놓는 이도 많을 것이다.

>> 2002년 6월23일

껄떡남을 연기했던 박재현씨에게 미안하다. 그리 많지 않은 그의 장면이 거의 다 편집과정에서 빠지게 됐다. 얼굴을 어떻게 보나. 류해진씨도 마찬가지다. 너무 잘했는데. 아깝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 2002년 7월6일

믹싱이 끝났다. 그러나 CG가 애를 먹인다. 작업 양이 거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수준이라고들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기차 바깥의 흐르는 풍경은 전부 손을 대야 하니까. 중간 정도 작업이 끝나고 들여다봤는데,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꽤 있다. 짜증이 나도 할 수 없다. 그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녹음실에서 시사를 했다. 영화하게 되면 음악을 맡기로 한 윤종신은 꽤 재밌어하는 눈치다. 나 역시 정형성을 피해서 엇박자, 언밸런스로 가자고 한 그의 음악이 만족스럽다. 아무래도 컨셉을 일찍 잡고서 대화를 많이 나눈 결과인 것 같다. 관수 형도 어느 정도 만족감을 표한다. 그런데 왜 관수 형은 살이 디룩디룩 쪄갈까? 모두가 살이 빠지는데 말이다. 미스터리다. 개봉이 다가올수록 이관수는 점점 거대해져간다.

에필로그 -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제 시작이다

>> 2002년 7월8일

모든 작업을 마치고 첫 일반시사를 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장하고 떨린 적은 없었다. 시사회장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보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에서부터 웃음이 터진다. 영화가 끝나고 박수도 한 차례 쏟아진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옆에 앉은 관수 형도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시사회가 끝나고 김승우, 차승원 두 배우와 배용준씨, 관수 형, 종신이와 함께 소주를 마신다. 잔뜩 긴장했다가 풀린 탓인지 소주가 막 들어간다. 마치 물 먹듯 소주를 마신다. 같이 마시던 배용준씨가 한마디 한다. 이 맛에 영화 하는군요, 라고. 맞다. 난 이 맛을 느껴보려고 그렇게 영화를 꿈꿨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내 꿈의 서막이 이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 이제서야 난 시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고락을 나눴던 스탭, 배우들이야말로 첫발을 내딛은 내 영화의 아버지요,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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