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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우 소설집 <객수산록>
2002-07-23

`별종`의 본뜻

사람이든 작품이든 ‘김원우’라는 이름 앞에 ‘별종’이라는 접두어를 붙이게 된 것이 어언 문단 주변에 자연스러워진 듯하다. 문장은 물론 일류고 작품 짜임새 탄탄하고 예술성이 무지근하지만 아무래도 문학과 시대의 흐름에 비해 별스럽고, ‘종’을 ‘쫑’으로 된소리 발음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소 이를 악물면서 (지칭자든 대상자든) 모종의 억하심정도 씹게 마련인 ‘별종’까지도 얼핏 어울린다는 투가 그의 평가에 늘 묻어나는 듯.

하지만 그가 ‘별종’이라니 당치 않다. 사실 김원우는 누구보다 정신 말짱하고 누구보다 정상적인 작가다. 어려우면 돌아가라는 격언은 소설 (줄거리의) 미학에서 이론의 여지없는 전락의 덫에 불과하다. 생애의 의미(의 아름다움)를 줄거리화하는 어려운 과정을 어려울 때마다 돌아간다면 ‘전설의 고향 이야기’ 모음집과 무엇이 다른가. 무엇보다 소설에서야말로, 돌아가는 길은 길이 아니다.

정상적인 소설가라면 어려운 길을 곧장 갈 것이고 훌륭한 소설가가 난해를 통과할 때 문체는 당연히 삶의 복잡성을 응축하면서 심화-의미화하고, 급기야 문체와 이야기의 ‘구분이 중첩’된다. 그 ‘광경’은 삶의 미학적 총체화로서 문학이 현실을 능가하는 ‘순간’이고 ‘광경’과 ‘순간’의 중첩이 영원한 ‘충격=감동’을 각인하는 요체다.

‘객수산록’은 ‘나그네 시름을 여기저기 적어놓다’쯤 될까? 작품 제목들과 후기의 짐짓 ‘별종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원우 작품집 <객수산록>은 이전보다 더 야심만만해졌다. <신종 미개인 일정>은 예의 총체 문체로 사건의 속도감을 한껏 내고 있으며(시쳇말로 재밌으며), <반풍토설초>는 놀랍게도 메모투 형식에 복합-응축의 최대치 문체를 짐지우면서 근대화에 대한 단상 등 ‘論’에 해당될 내용까지 소설의 ‘문체=이야기’로서 육(肉)으로 전화시킨다. 소설화자의 발걸음은 소재상 방황하지만 미학적으로 너무도 적확하여 그대로 소설의 발걸음이 된다.

나머지 작품들은 두 극단 사이 징검다리로 요령있게 배치되어 있다. <반풍토설초> 대장정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믿기지 않아.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이 앉아 있어. 무슨 설화(說話)의 세계 같잖아…. 묻노니 다중들이며. 희귀하대서 ‘별쫑’인가? 다수가 미치고 극소수가 멀쩡하다면 그래서 극소수가 미칠 노릇이라면, 그게 ‘별쫑’인가?김정환/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