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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 미 초콜릿의 기억
2002-07-24

김훈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미군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다지 진보적이거나 자주적인 것이 못 된다. 나는 내 유년의 배고픔과 공포의 추억 속에서만 미군을 생각할 수 있다. 나이 오십이 훨씬 넘은 지금도 나는 길에서 주한미군을 마주치면 주눅이 들어서 피해간다.

아아, 미군.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미군 지프를 따라가면서 그들이 던져주는 초콜릿을 받아먹으며 나는 자랐다. 나보다 좀더 나이 많은 소년들은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들어가 미군의 속옷을 빨고 쓰레기를 치웠는데, 그 하우스보이 자리는 미군과 특별한 은총의 관계에 있는 소년에게만 돌아가는 행운이었다. 그때의 초콜릿 맛은 천지가 개벽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은 놀라움이었다. 미군에게 얻은 초콜릿을 들고 가족들이 사진관에 가서 기념촬영을 하는 집도 있었다.

내 유년의 추억 속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색깔은 양담배 러키스트라이크 껍데기에 인쇄된 빨간색 동그라미였다. 그 진홍색은 내 어린 생애에서 일찍이 체험하지 못한 찬란한 광휘였다. 그 색깔의 풍요로움은 초콜릿의 맛과 같았다. 그 빨간 동그라미를 가위로 오려서 팽이에 붙여서 돌렸고, 양철 필름에도 붙였다. 초콜릿의 맛과 러키스트라이크의 색깔은 모두 도달할 길 없는 풍요의 낙원이었고, 그것은 모두 미군의 것이었다. 판자촌에 이가 들끓어 DDT 봉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겨울을 났는데, 그 DDT도 미군의 것이었다. 내 유년의 냄새는 DDT 냄새다. 그 냄새는 내가 ‘위생’이라는 문명을 처음으로 후각에 저장한 것이었다. 지금도 어쩌다가 병원에 가면 소독약 냄새 속에서 어렸을 적 DDT 냄새가 피어올라 나는 쓸쓸하다.

겨울이면 아이들은 모두 담요로 만든 방한모를 쓰고 학교에 왔는데, 그 모자 챙에는 USA, MP, UN, ARMY 같은 영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밀가루 부대나 교과서 뒤표지에는 모두 미국의 원조로 제작된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른들은 미군부대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다버린 닭다리나 빵조각을 모아 푹푹 끓여서 유엔 죽을 만들어 먹었다. 유엔 죽에서는 지금의 부대찌개를 먹을 때처럼 미군들의 누린내가 났다. 거지꼴을 한 어린아이들이 전봇대처럼 키 큰 미군의 가랑이 양쪽에 한명씩 들러붙어서 침을 퉤퉤 뱉어가면서 군화를 닦았다. 어떤 미군은 구두를 다 닦고나면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구두약통을 발길로 걷어차고 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그때는 미8군 쇼부대가 한국 가수가 출세하는 데뷔무대였다. 8군쇼 출연 경력이면 대번에 톱스타가 될 수 있었다.

아마도 미군에 대한 콤플렉스는 나뿐 아니라 한 시대를 지배했던 보편적 정서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만치 먹고살게 되어서 ‘자주국방’을 외치는 시대에도 그 사회적 콤플렉스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양주군 광덕면에서 지방도로의 갓길을 걷던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숨졌다. 분노한 사람들이 연일 미군부대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미군은 내다보지도 않는다. 미군 헌병들은 미군 피의자들을 영내로 데리고 들어갔다. 한국 경찰은 피의자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공무와 관련이 없는 미군 범죄는 한국 정부에 재판권이 있고, 공무수행 중에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재판권을 이양받아올 수 있다. 그러나 소파규정이 그렇다는 말이고, 한국 정부는 재판권을 대부분 미군쪽에 넘겨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군을 동등한 계약과 협의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미군의 우월성과 특수성을 능동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다. 아마도 한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저 배고픈 유년의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군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제 나라 일등병의 유해를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기어이 찾아내서 성조기를 덮어서 본국의 고향에 안장한다. 장중한 군대의전을 받으며 판문점을 넘어오는 미군유해의 사진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미국은 참 좋은 나라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사진은 국가주의의 힘세고 단단한 위용이었다. 미군 헌병들이 외출나와서 사고치는 미군 범죄자들을 우선 자기네 영내로 데려가는 것도 그같은 국가주의의 저급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강대국의 울타리를 누가 넘보랴는 식이다.

미군의 그 국가주의는 주둔국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서 퇴색해갔고 결국은 미군의 위상에 막대한 타격이 되었다. 양주군 여중생 압사사건의 진상을 아직도 한국 국민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사태는 슬그머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군들은 이제 알아야 한다. 한국은 이미 나처럼 DDT 콤플렉스에 젖은 세대의 나라가 아니라, 초콜릿을 얻어먹은 적이 없는 새로운 세대의 나라인 것이다. 김훈/ 소설가·<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