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쳐다보지 마라>
2002-07-31

죽은 딸을 위한 레퀴엠

Don’t Look Now 1973년, 감독 니콜라스 뢰그 출연 도널드 서덜런드 EBS 8월3일(토) 밤 10시

“우리 딸은 이미 죽었단 말이야. 그 사실을 잊었다는 거야?” 남편은 아내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어머니는 소망이 하나 있다. 잠시라도 좋으니 죽은 자식의 혼을 만나고 싶다는 것.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남편은 아내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다. <쳐다보지 마라>는 미스터리 호러영화다. 초자연적 현상을 우리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그것을 눈으로 대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을까. 한 아이의 죽음을 놓고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영화는 아릿한 슬픔이 배어 있는 심리공포의 세계를 구축한다.

존과 로라 부부는 베니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우연히 두 중년여성을 만나는데 이들 중 한 사람은 영매임을 자처한다. 영매는 처음 로라를 대면한 뒤 그녀의 과거에 대해 자세하게 되묻는다. 그리고 존과 로라의 딸의 영혼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부는 얼마 전 사랑스런 딸을 잃은 상태다. 로라는 영매의 말을 믿고 영혼을 불러들이는 의식을 치르길 제안하지만 막상 존은 그들이 사기꾼은 아닌지 의심한다. 하지만 존은 딸의 영혼이 눈앞을 스쳐가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의 시각적 구성은 탄탄하다. 우리는 영화 초반에 한 아이가 연못 근처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존 부부는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가 생명의 위협받을 때, 부부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다른 공간에 속한 이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영화는 간결하게 설명한다. 몇 가지 이미지를 나열하고 편집 순서를 뒤섞는 간단한 눈속임만으로 상황은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다. 관객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니콜라스 뢰그 감독은 서사 구축보다는 이미지의 배열, 시각적 모티브의 활용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쳐다보지 마라>에서도 감독은 유리와 붉은색, 그리고 물의 이미지를 통해 죽은 아이에 관한 추억을 상기시킨다. 존과 로라 부부는 이 과정을 거쳐 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혼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니콜라스 뢰그 감독은 <퍼포먼스>(1970)를 만든 이후 컬트감독이 되었다. 록스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는 성과 마약의 소재를 자유롭게 다루었고 그의 명성을 높여준 영화이기도 했다. 이후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배드 타이밍> 등의 주목할 만한 문제작을 만들면서 니콜라스 뢰그는 장르영화의 틀을 허물고 파격적인 소재를 즐겨 다루는 연출자로 인정받았다. <쳐다보지 마라>는 히치콕에게서 영향을 받은 스릴러로, 영화 속의 몽환적인 이미지와 고립된 인물의 심리묘사는 평단의 고른 지지를 얻은 바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