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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소녀백서
2002-08-01

말풍선과 투덜이들

Ghost World감독 테리 지고프자막 영어, 한국어 화면포맷 아나모픽 1.85:1 오디오 돌비 디지털 5.1 지역코드 3 출시사 비트윈

최근에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꼭 볼 거라는 확신이 있는 영화들은 관련 정보들을 의식적으로 기피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귀찮은 그런 버릇을 들이게 된 이유는, 너무 많은 정보를 미리 알아버리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데 상당한 방해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난 양의 관련 매체들을 매일 접해야 하다보니 개봉영화의 줄거리나 주연배우들에 대한 정보들까지 피해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작전이다. 하지만 그 밖에 자투리 정보들은 노력하는 만큼 기피할 수 있는데, 그런 노력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 바로 <판타스틱 소녀백서>였다.

이 영화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다가 스티브 부세미가 믿을 수 없도록 순진한 남자를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꼭 보고 싶었지만, 극장 개봉당시는 도저히 보러 갈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관련된 다른 정보를 철저히 피해가는 전략을 구사했는데, 그 결과로 얼마 전 출시된 DVD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메뉴화면에서부터 ‘어…? 이 영화, 원작이 만화라더니 혹시 언더그라운드만화 아냐’라는 생각이 든 것이, 전체 DVD를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요소였다. 미국의 출판만화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특유의 말풍선 그림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메뉴화면에 활용되고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삐딱한 포즈에 반항적인 표정의 캐릭터들이 딱 언더그라운드만화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날이 그날 같은 무기력한 일상에 대해 끊임없는 불평을 하는 투덜이 주인공들의 등장은, 미국 언더그라운드만화에서 즐겨 사용되는 설정이었던 것.

그런 내 추측이 맞는지는 다행히도 서플먼트 속의 ‘Making-of Ghost World Featurette’ 코너를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원작을 그린 언더그라운드만화가인 다니엘 클라우즈가 직접 등장해 시나리오에서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제작 전반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던 것. 게다가 척 봐도 뭔가 마니아적인 이미지를 사정없이 풍기는 테리 지고프 감독이 “아내가 원작만화의 열렬한 팬이라 영화로 만들어볼 것을 강력히 추천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원작만화 속의 여주인공 ‘이니드’와 영화 속 주인공을 연기한 도라 버치의 생김생김과 패션을 비교해 보여주는 장면은 만화를 상당히 좋아하는 나에게 묘한 쾌감을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타스틱 소녀백서> DVD는 관련 정보를 최대한 차단한 효과를 짭짤하게 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처럼 극장에서 보지 못할 영화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정보를 꿰고 있는 상태에서 봤더라면, 그렇게 작은 요소들에까지 흥미로움을 느끼며 재미있게 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김소연/ DVD 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