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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죽여도 좋은가? [1]
이영진 2002-08-02

섹스장면 이유로 제한상영 등급,사실상 상영불가 판정받아

적절한 ‘제한’인가, 과도한 ‘침해’인가.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의 등급분류 기준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7월22일, 등급위가 일부 섹스장면이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하자 영화인회의, 한국독립영화협회, 문화개혁시민연대 등의 단체들이 “2기 등급위가 새로 구성되었지만, 등급 분류에 있어 여전히 낡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질세라 등급위도 “성기노출은 성인용 비디오에서도 금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맞서면서 제한상영 등급의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죽어도 좋아>는 70대 노부부의 사랑을 가감없이 다룬 작품. 뒤이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도 초청되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등급위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이상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등급위의 등급보류 조치는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정부와 영화계는 등급보류 조치를 없애고, 제한상영 등급을 신설한다는 내용으로 영화진흥법을 개정, “모든 영화에 등급을 부여할 수 있도록” 심의제도를 개편했지만, 현실적으로 제한상영관이 전무한 상황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은 ‘상영불가’ 판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30일 이내에 사유서를 첨부해서 등급위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방안이 남아 있지만, 제작사나 감독에게 등급위의 이번 결정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성기노출과 오럴섹스, 받아들일 수 없다”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이하 소위원회) 회의가 열렸던 지난 7월22일. 표결에 앞서 위원들 사이에서 격론이 오간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날 회의는 “극중 7분간 묘사된 노인들의 섹스장면 중 성기노출 및 오럴섹스 부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과 “특정 장면만을 문제삼아 결과적으로 상영 자체를 막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전체 맥락상 18세 관람가 등급을 줘도 무방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줄다리기는 표결에서도 참석위원 8인이 4:4 동수를 이뤘을 정도로 계속됐지만, 결국 위원회 규정에 따라 소위원회 위원장인 유수열 위원의 직권으로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 등급이 내려졌다.

현재, 등급위의 입장은 단호한 것처럼 보인다. 유수열 위원은 7월23일 “이번 결정은 국민들의 기본 정서를 고려했으며,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등급위 김수용 위원장도 나서 “이번 소위원회의 결정은 충분한 논의와 민주적인 표결 절차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성기노출은 무조건 안 된다는 원칙을 미리 정한 것은 아니지만, <죽어도 좋아>처럼 직접적으로 성기를 노출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담은 영화를 상영할 경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고 이후 등급분류 때마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영화인회의,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을 비롯 영화계의 반발 또한 거세다. 영화인회의 유창서 사무국장은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특정 부위가 노출되는 부분 묘사만을 문제삼아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이는 등급위의 등급분류가 여전히 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8세 관람가’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진 조영각 등급위원 역시 “이번 소위원회의 심의결과는 상영되지 못하는 영화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난해 8월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며 “제한상영 등급 적용에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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