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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감독님 ‘야비한’ 주문 끝났죠?
2002-08-02

<박하사탕>(1999)에서 호흡을 맞췄던 설경구 문소리씨가 2년만에 이창동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오아시스>에서 다시 만났다. 설경구씨는 가족과 주위로부터 완전히 따돌림당하는 기묘한 사회부적응아 홍종두를, 문소리씨는 뇌성마비 장애인 한공주 노릇을 연기했다. 문소리씨는 몸이 심하게 뒤틀리고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한공주 역을 연기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 단계 때부터 장애인들과 생활하기도 했다. 촬영기간 다섯 달 반 동안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온 셈인 문소리씨는 골반이 약간 뒤틀려 교정이 필요한 상태다. 한 장면 한 장면에 대해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이창동 감독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 작품을 찍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둘 다 배역을 선뜻 맡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설경구 : (이창동 감독이) “니 성격이랑 하나도 맞는 게 없을 거다. 안 해도 되니까 할지 말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뒤 하겠냐 말겠냐 묻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했다. 이 감독이 쓴 거니까 믿고. 문소리 : 촬영에 들어가기 전, 혼자 매트리스 깔아놓고 장애인 연기를 연습하는 걸 트레이너가 비디오로 찍었다. 이 감독이 오디션을 비디오로 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이런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무지무지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비디오 플레이 버튼을 못 누르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때 감독은 이 영화 덮어야 하나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지혜 선배가 결정적으로 도와줬다. 내가 울어도 언니는 날 위로하는 대신 ‘니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며 설득했다.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했나.문 : 계속 한공주의 상태로 살았다. <나의 왼발> 등 장애인이 나오는 비디오는 다 빌려다 봤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 촬영 전에 휠체어 타고 코엑스몰도 가고 식당도 가봤다.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휠체어만 다가와도 눈길을 슬쩍 돌렸다. 시선의 높이가 달라 너무 어지러웠다. 그러다 화장실 가고 싶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더니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중엔 (촬영하면서) 모니터 보면서도 괜히 몸이 돌아갔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경구 오빠나 스텝들도 다 (장애인처럼) 몸이 돌아가서 모니터를 봤다. 설 : <박하사탕>의 영호보다 훨씬 어려웠다. 영호는 감성적으로 나 자신과 맞았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도 어렵지 않았다. 경찰 가운데 실제 그런 사람 있으니까. 그런데 종두는 감성적으로도 머리로도 와닿지 않았다. 처음엔 어리버리 바보짓이나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박하사탕> 때는 첫 감정을 그대로 쭉 끌고 가면 됐다. 그래서 <박하사탕>은 끝나고도 영호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종두는 감이 안 잡히는 애다. 진짜 ‘또라이’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있는 앤데 어디로 튈지 모른다. 너무 바보처럼 연기하면 감독은 “종두 바보 아냐”라고 하고, 멀쩡하게 연기하면 “너무 정상인 같은 거 아냐”라고 지적했다. 이창동 감독에 대해. 설 : 그 성격은 누구 줘도 안 가져갈 거다. 무지하게 약은 사람이다. 현장에서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미안해한다. 모든 책임을 자기가 다 지려 한다. 그러면서도 (찍고 싶은 장면을) 절대 포기 안 한다. (시나리오를 보면) ‘야비한’ 지문이 무지 많다. (종두 엄마 생일잔치 장면에서) “웃는데 우는 듯 재미있게 꺽꺽꺽 운다.” 대체 어떻게 연기하라는 얘긴가. 글로는 뭘 못 쓰겠어. (종두가 출소한 뒤 두부 먹을 때) 가게의 비닐이 펄럭이는 게 ‘감정이 없다’며 반을 잘라냈다. 비닐 펄럭이는 데 무슨 감정! 그래서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변태죠” 그러자 이 감독의 대답. (종두의 말투로) “그래∼, 나 변태다∼.” 문 : (배우들에게) 미안해하면서 시킬 거 다 시키는 거 정말 너무 싫다. 강간 신의 경우 열 몇 번이나 찍었는데도 ‘약하다’고 계속 다시 갔다. 거의 실신 상태인데 그날 밤 하나 더 찍자고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오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포도당 주사 맞고 세 시간 자고 왔더니 준비 안 됐다고 해서 허탈하게 그냥 집에 간 적도 있다. (시나리오의) 지문에는 온갖 호흡이 다 나온다. ‘꿈꾸는 호흡’이 도대체 뭔가. 촬영할 때도, 가능하지 않은 주문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면 난 그랬다. “여기서 더 어떻게 꺾으란 말예욧! 해보세요, 한번! 감독님이!”다음 작품설 : 경찰서, 교도서 갈 일이 이렇게 많지(<오아시스>에서도 구속당함) <광복절 특사>(김상진 감독)는 20% 정도 찍었다. <광복절…> 이후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 문 : 한국에서 여배우란 셋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예쁘거나 귀엽거나 섹시하거나. 이젠 (한공주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 감독과 한번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박하사탕> 이후 이지행 감독의 <봄산행>이란 단편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소통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이상수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