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이창
송강호씨,송강호 선생님
2002-08-28

조선희의 이창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우리는 취재원에게 ‘님’자를 붙이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다.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당당한 기자 입장을 지키라는 뜻이었을 게다. 하지만 나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님’자 붙여 불렀다. 정지영 감독님, 이태원 사장님, 안성기 선생님, 뭐 그렇게. 나는 보편적인 언어문화 안에서 통용되는 호칭을 썼다. 당당한 기자 입장은 호칭이 아니라 기사를 통해 지켜지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처럼 계급성이 눈부시게 발달해 있는 언어가 또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만나 사귀는 것은 호칭을 통해 서로간의 질서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때로는 이 호칭협상에서 밑지지 않으려는 집요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영화판을 보면, 계급지향적인 우리 언어문화로 인해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이 배우들이다. 배우는 백의종군형 직종이고 계급장 없는 계급이다. 제작자는 사장님, 연출자는 감독님, 시나리오 작가는 선생님, 촬영감독이나 조명감독은 감독 또는 기사님, 뭐 이렇게 들을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호칭들이 하나씩 있는데 배우들은 그런 게 없다. 나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배우들, 또는 안성기쯤 되는 대배우라면 현장에서 모두들 선생님 또는 선배라고 불러주지만, 범례는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찍은 류승완 감독과 배우 전도연씨가 동갑이라 한다. 촬영현장에 가보지는 않았으나, 현장에서 두 사람의 호칭은 분명 ‘감독님’ ‘도연씨’였을 거다. 충무로에 나와서 고작 첫 작품을 찍는 감독이, 필모그래피만 해도 A4용지 한장이 넘을 백전노장 스타 배우한테 엇다 대고 도연씨야, 전도연 선배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한다면 거짓말이고, 이건 좀 이상한 질서구나, 라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예전에 <교도소월드컵> 제작팀을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 있는데, 방성웅 감독이 주연배우 정진영씨와 동갑이던가 한살 어리던가 하다고 했다. 내가 서로를 어떻게 부르냐고 했더니 정진영씨가 ‘감독님-진영씨’라 부른다면서 “그게 뭐가 이상해요?”라고 반문했다. 촬영현장의 절대권력은 감독이라는 사실에 입각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구경꾼 처지를 망각한 채 나는 불편해진다. 촬영현장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자리에서 한 젊은 기자가 자신보다 10살쯤 많은 배우 송강호씨한테 ‘송강호씨’ 하고 부르고 송강호씨가 ‘000 기자님’ 하고 말했을 때 나는 공연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끌벅적한 술자리였고 술이 제법 됐던 송강호씨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기자에게 화답했지만, 이 자리에서 나는 기자협회 회장도 뭣도 아니면서 한국의 기자들을 대표해서 송강호씨한테 미안했다. 그렇다면 뭐라고 불러야 적당할까. 송강호 선생님? 그것도 좀 이상하다.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생존조건들 중에서 가장 흉악한 것은 ‘죽도록 공부하기/죽도록 일하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소프트웨어적인 차원에서 거기에 버금가게 까다로운 것이 ‘적절하고도 예의바른 언어구사’의 문제인 거 같다. IQ와 EQ가 웬만해서는 모든 경우에 가장 적절한 호칭을 찾아내기 어렵다. 이 언어문화를 40년 동안 불철주야 배우고 익혀온 나도 아직 이 과정을 졸업하지 못한 형편이다. 나 역시 최선의 호칭을 찾다가 포기하고 애매하게 뭉개면서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관계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 과정을 결코 졸업할 수 없는 건, 언어문화란 우리가 배우는 동안에 벌써 바뀌어 있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어렸을 때는 ‘씨’가 상대를 높여서 부르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신문사에서 ‘씨’는 후배에 대한 호칭이고 일반적으로도 낮춤말이 되어 있다. 간호사 운전사, 또는 ‘미스’ ‘미스터’ 같은 호칭들이 평가절하되어 더 근사해 보이는 다른 호칭으로 대체되듯, 언어문화에도 꾸준히 인플레현상이 진행돼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언어문화에도 일종의 화폐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10:1, 또는 100:1 정도로 평가절상을 해 거품을 빼내고 호칭의 수요공급을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씨(氏)를 존칭으로 원위치시킨다. 송강호씨!라고 불렀을 때 거기에서 최대한의 존중과 존경의 뜻이 전달될 수 있도록. 그러면 아랫사람은 어떡하지? 예전엔, 군(君), 양(孃)이라고 불렀으니 그러면 되겠군. 하나 그것도 ‘성구별적’이라는 문제가 있긴 해. 여하튼 전반적으로 호칭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별 이의가 없겠는데…. 하지만 금융실명제는 정부에서 하고 한반도 긴장완화는 남북회담에서 하는데 호칭개혁은 어느 기관에서 실시한다? 그것이 문제로군.조선희/ 소설가·전 <씨네21>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