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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슬픔은 그대 가슴에>
2002-08-28

행복하지 않은 해피엔딩

Imitation of Life 1959년, 감독 더글러스 서크 출연 샌드라 디 EBS> 9월1일(일) 낮 2시

“시간만이 더글러스 서크의 가치를 입증해줄 것이다.” 평론가 앤드루 새리스는 일찍이 서크 감독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다. 더글러스 서크는 1950년대까지 서구 평단에서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의 영화는 대개 가족 멜로드라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흥행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곤 했다. 여성관객의 정서에 어필하는 ‘최루성’ 성격이 짙은 서크의 영화에 대해 평단은 냉정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달라진다. 서크 감독은 독자적인 스타일, 그리고 주제의식을 영화에 불어넣은 연출자로 재평가되었으며 <슬픔은 그대 가슴에>는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수작으로 남게 되었다.

<슬픔은 그대 가슴에>는 어느 모녀에 관한 영화다. 배우를 지망하는 로라와 그녀의 딸 수지는 애니 모녀를 우연히 만난다. 흑인인 애니는 백인 남자와 사이에서 낳은 딸 사라와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처지가 비슷한 로라와 애니는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살게 된다.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지던 로라는 사진작가 스티브의 프로포즈를 받는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스타가 된 로라는 스티브와 사랑을 이루려고 하지만 뜻대로 일이 풀리질 않는다. 사라는 흑인의 딸임을 숨기고 데이트를 하다가 남자에게 버림받고 밤무대 댄서가 된다.

“이것은 희망없음에 관한 영화다.” 서크 감독은 <슬픔은 그대 가슴에>를 이렇게 요약했다. 영화는 두쌍의 모녀의 삶을 보여준다. 피부색이 다른 여성들이 정신적으로 의존하면서 가족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흑인인 애니는 로라의 집에 얹혀살면서 가사일을 돕게 된다. 애니의 딸은, 이상하리만큼 예쁘다. 흑인 어머니를 전혀 닮지 않았으며 피부 색깔은 백인과 다르지 않다. 이 모녀의 일상은 지옥 같다. 친구와 이웃에게 사라는 애니가 자신의 모친이 아니라고 대충 둘러댄다. 여성영화의 구도를 지닌 <슬픔은 그대 가슴에>는 여성의 사회진출, 그들의 연대, 그리고 더 넓게는 인종문제까지 건드리면서 이야기의 풍성함을 더한다. 서크 감독은 멜로드라마의 구태의연한 관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화의 톤은 무겁고 비관적인 것으로 이끈다.

결말은 다소 어색하다. 애니가 세상을 뜬 뒤 사라는 잘못을 깨닫고 남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가족은 다시 화합한다. 서구 평론가들은 서크 감독 영화에서 ‘행복하지 않은 해피엔딩’이라는 특징을 발견했다. 내러티브를 억지로 짜맞춘 듯한 어색한 결말이 관객에게 영화의 사회적 함의를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더글러스 서크 감독은 극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관객의 사고를 유도하는 인위적인 결말을 만들어내곤 했다. 같은 이유로 서크의 영화를 본 이들은 눈물을 연신 훔치면서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허구성을 절감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