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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의 집으로 오세요,8월17일 개관한 `슐츠 박물관`
2002-08-29

anivision

최근 다양한 산업적 가치부양 덕분에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올라가긴 했지만, 그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대접은 아직도 편협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자국영화의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일본조차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부문을 문화적 반열로 끌어올리기엔 아직도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는 얘기. 그래도 어느 정도 사회적, 문화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작품이나 작가의 면면을 세고 있다보면 그 길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난 8월17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로사에서는 ‘찰스 M 슐츠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슐츠는 국내에서는 ‘스누피’나 ‘찰리 브라운’이라는 캐릭터명으로 더 유명한 만화 <피너츠>의 ‘창조주’. 이 작품은 1950년 처음 선보인 이후 원작자가 병으로 은퇴한 2000년까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75개국, 2600여 신문을 통해 연재되며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스누피, 찰리 브라운, 루시, 라이너스와 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재치 넘치면서도 철학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면서, 세계 각국의 여러 세대와 함께 성장해왔다. 2000년 2월 <피너츠>의 창조주 찰스 슐츠가 77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했을 때 세계의 유명 카투니스트들은 100여편이 넘는 애도작품을 통해 거장의 죽음을 독자들과 함께 슬퍼했다. 이제 슐츠 박물관은 그 거장의 세계가 기억속이 아니라 지상에 살아남았음을 증명하는 장소가 되었다.

총 800만달러(약 95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2층짜리 자그마한 박물관에는 작가의 작업실이 재현해 놓았고, 만화의 원본 등을 주제별로 기획전시하는 전시실, 애니메이션화한 <피너츠>나 생전의 슐츠를 보여주는 영상물 등을 보여주는 상영관 등이 갖춰져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왕국이라 자칭하는 일본에는 10개 정도의 만화·애니메이션 박물관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할만큼 많은 숫자다(작품이나 작가 수에서 다른 나라의 경쟁이 되지 않는 일본의 환경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르지만). 박물관들은 대부분 ‘데즈카 오사무’(아톰, 불새)나 ‘이시노모리 쇼타로’(사이보그009, 가면 라이더), ‘야나세 다카시’(호빵맨), ‘미야자키 하야오’(토토로, 코난) 등 특정 작가나 작품을 테마로 형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그 지역의 훌륭한 문화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박물관들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수십년 동안 숙성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파워를 발휘하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관람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작가, 작품, 캐릭터의 존재가 그 파워 증강의 원동력이었다는 순환논법도 가능하겠다.

어쨌든, 얼마전 일본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왜 이 작품을 보게 되었느냐’는 질문(복수 답변)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니까’라는 답변이 50% 가까이 되었을 정도. 일본의 최대 장난감 메이커인 ‘반다이’의 최대효자 캐릭터 자리는 20년도 넘는 나이를 먹은 ‘기동전사 건담’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 쏟아져나오는 캐릭터들 중에서 과연 얼마나 20년, 30년 뒤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년, 30년 전에 만들어낸 ‘태권V’ ‘일지매’ ‘꺼벙이’ ‘찌빠’ 같은 캐릭터들은 명맥 잊기에 숨이 가쁜데, 그나마 새롭게 뜨고 있는 작품들은 TV애니메이션 같은 돈드는 일보다는 가볍게 벌 수 있는 캐릭터상품 개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 나온 ‘마징거Z’ 관련 상품은 수백 가지가 넘는다. ‘태권V’는 채 다섯종도 안 된다. 뒤쪽에 뿌린 씨앗들은 자라다가 말라 죽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씨앗만 계속 뿌리며 독한 화학비료만 주고 있는 형국이다. 문화가 되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