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독립영화 장편들 개봉 “일단 봐준뒤 제대로 밞아봐”
2002-08-30

독립영화에 대한 반응은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는 독립군을 떠올리며 비장한 그 무엇으로, 어떤 이는 영어 ‘인디펜던트’ 혹은 ‘인디’라는 단어로 번역하며 세련된 저항의식과 덜 세련된 작품 수준을 동시에 떠올릴 것이다. 하긴 독립영화 보기가 어디 쉬운가 죄다 선택받은 놈들이 찧고 까부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탓할 수만은 없다. 게다가 독립영화라는 말이 풀풀 풍기는 촌스러움은 또 어떻고.

그렇다. 현재의 한국 독립영화는 이런 인상들을 모조리 안고 있다. 대세로 보면 독립영화는 분명 충무로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있다. 또 아마추어 영화인들의 너저분한 수련 과정의 결과물인 동시에 재주있는 젊은 엘리트 영화인들이 충무로 현장의 빡빡 기는 고생을 피해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과거 운동권 인사들 중에 별별 사람이 다 있었고 이후 그보다 더 별별 인종들로 분화되었던 것을 떠올린다면, 독립영화라고 봐 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안 봐줄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지점에서 독립영화를 바라보는 일이다.

현재의 지점에서 보면 당장 뚫어야 할 벽은, 충무로로 가지 않고도 일반 관객들과 ‘상업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편이라는 형식이 필요하다.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편 <낮은 목소리>나 몇몇 유명한 단편들을 묶어서 시도한 적은 있지만, 독립 장편 극영화가 상업용 극장을 돌파하는 것은 정말 의미 깊은 일이다. 30일 <우렁각시>(서울아트시네마, 02-720-9782, 9월3일부터 시네마테크 부산, 051-742-5377)를 시작으로 <둘 하나 섹스>(9월 19일, 서울아트시네마), <사자성어>(9월 27일, 코아아트홀 예정, 02-739-9933) 그리고 지난 27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재심에서 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죽어도 좋아>와 <뽀삐>, <다큐멘터리 한대수> 등이 묶음으로 10월초 개봉(하이퍼텍 나다, 02-741-3391)될 예정이다. 독립영화에 익숙한 관객이 아니라면 이 영화들의 제목은 모조리 참 낯설 것이다. 아마 영화도 참 낯설 것이다. 그러나 이 낯설음은 분명 새로운 경험인 동시에 불편한 쾌락이 될 것이다.

장지욱·이천우 감독이 공동연출한 <다큐멘터리 한대수>는 바로 그 유명한 가수 한대수의 열정과 이력과 거침없음과 서글픔을 담고 있다. ‘멍든 가슴 손에 들고’라는 그의 노래 가사가 한국을 떠나는 그의 입에서 대사로 나올 때, 그 작은 대사가 온 몸으로 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뽀삐>는 참으로 이상한 생각으로 이상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잘 만든 <바다가 육지라면>과 <연애 이야기> 등을 만든 김지현 감독의 신작이다. <둘 하나 섹스>(이지상 감독)는 영화 심의가 헌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낸, 야하고 슬프고 거친 막무가내 영화다. 혹시 몸에 태극기를 감고 88년 시위현장을 지휘하던 김중기씨를 기억한다면, 이 영화에서 연기로 재훈련된 그의 벌거벗은 몸을 볼 수 있다. <사자성어>는 김정구, 유상곤, 이송희일, 이지상 등 심상찮은 네 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성을 소재로 풀어간 옴니버스이며, <우렁각시>(6㎜ 디지털 작업 후 필름으로 전환)는 설화 우렁각시를 현재 상황에 삽입한 독특한 팬터지물이다. <우렁각시>를 만든 남기웅 감독은 이미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 6㎜ 디지털, 60분)로 상상력과 영화적 표현력 그리고 세상을 보는 뒤틀린 눈을 드러내 보인 바 있다. 그 뒤틀린 눈은 전혀 고식적이지 않으며, 그 상상력은 도대체 문맥이 없다. 잡종이면서도 정말 순수하다. 모든 영화가 다 들어와 있으면서도 구성과 발언은 우리 사회의 진짜 밑바닥에서 날카롭게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웃기는 총 밀매상과 건달 출신의 국회의원 그리고 우렁이가 나오는 <우렁각시>는 전작의 날카로움이 조금 무뎌진 대신 유머가 늘어났다. 같이 본 아이는 황당하고 웃기며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상할 수밖에. 남기웅 감독이 만든 <강철>(1999, 8㎜ 비디오, 30분)에는 비관적인 세기말적 영상이 넘실댄다. 그 염세가 유머로 작전상 탈바꿈했으니, 이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시장에 던져진 독립 장편 극영화, 봐줄 것도 없고 안 봐줄 것도 없다. 안 봐주면 독립 극영화는 한동안 코피 묻은 손으로 술잔을 기울일 것이다. 만약 봐준 뒤 제대로 밟아준다면, 독립영화는 나르시시즘과 알 듯 모를 듯한 진창같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 <파업전야> 이후 12년만에 다시 던지는 주사위인 셈이다.

이효인/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yhi6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