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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게임 메뉴얼 1.0 (7)
2002-09-07

가상현실부터 , <성소>사전

리플레이<성소>의 공간은 게임 속 가상현실이다. 때문에 설사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해도 게이머는 ‘인서트 코인’해서 ‘게임을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를 클릭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3단계의 후반부, 주는 잘못된 선택으로 시스템에 의해 개죽음당한다. 주는 게임을 이어 진행하지 않고, 다시 자장면 배달부의 자리로 돌아온다. 주가 단란주점에 철가방을 들고 가는 장면이 나오고 검은 화면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때 영화는 잠깐 멈추고, PC방으로 돌아와 주로 하여금 다시 선택하게 한다. 주는 게임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한다. <성소>에서 ‘리플레이’라는 요소는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주기 위해 도입된 게 아니다. 게이머들의 끝없는 ‘리플레이’를 유도해 이득을 취하려는 시스템의 계략, 또는 끝없이 순환하는 윤회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 모든 상이 깨지고 그동안 진행됐던 영화장면을 모두 거슬러올라간 뒤 주와 성소가 맞이하는 새로운 세상은 어쩌면 이 사슬들을 끊어낸, 진정으로 자유로운 곳인지도 모른다.마케팅<성소>는 개봉을 앞두고 약간의 혼선을 빚었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이 영화를 여름영화 시즌에 개봉해야 한다고 판단, 8월2일로 개봉일을 확정했던 것. 하지만 완성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작진은 보충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 결국 개봉은 9월13일로 연기됐다. 이로 인해 가장 정신이 없었던 쪽은 8월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던 홍보사였다. 가뜩이나 ‘장선우표 영화’라는 점과 ‘100억원대의 블록버스터’라는, 일견 상반된 영화의 얼굴을 하나로 보여주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왔던 이들은 또 하나의 골칫덩어리를 안게 됐다. 거리에 붙여놓은 플래카드, 극장의 예고편, 포스터 등을 회수할 수도 없고, 유지시킬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을 맞은 것. 결국 포스터와 예고편을 새로 만드는 등 보완작업을 벌여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때이른 마케팅 활동은 영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매트릭스<성소>를 보고 있노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매트릭스>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나 가상현실 공간에 대한 시각적 표현, 현란한 와이어 액션 등 두 영화의 유사점은 적지 않다. 사실 장선우 감독도 이 영화를 구상하던 중 <매트릭스>를 보곤 “우리 현실에서 이런 퀄리티와 기술을 발현하지 못할 텐데, 굳이 내가 이 영화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가상현실과 현실이 이분법으로 나뉜 <매트릭스>와 달리 그가 구상하던 영화는 그 둘을 하나로 보듬어내는 것이었으므로, 자신의 영화를 꾸리게 됐다. 그는 <성소>가 <매트릭스>보다는 차라리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아바론>에 가깝다고 한다.미확인 비행물체(UFO)순간적으로 지나가는 UFO를 절대 놓치지 말 것. 일종의 ‘히든카드’라 할 수 있는 UFO의 존재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장선우 감독이 이 영화에 UFO를 넣게 된 계기를 얘기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어느 TV프로그램에서 UFO를 타고 외계인을 만났다는 사람을 본 적 있다. 그 사람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그 외계인은 자기들이 지구보다 2만5천년 앞선 문명을 꾸리고 있고, 소수인종이건 동식물이건 주파수를 통하면 모두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는 것. 그리고 그 외계인은 결국 기술이란 그래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기술의 발전이란 것에 대해서 한번 믿음을 가져볼 만하다, 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과학과 철학이 이렇게 만나는구나, 이런 생각. 결국 UFO가 철학이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테크노 타오이즘, 도와 기술이 통할지도 모른다.바다3단계의 후반부, 성소는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장 감독에 따르면 바다는 해인(海印)이다. 해인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말로,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할 때 거친 파도, 즉 중생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 이 영화에서 바다는 모니터다. 온갖 정보와 데이터가 그 안에 뜬다. 삼라만상이 그 안에 있다는 얘기. 이 모니터의 데이터도 공(空)이기도, 실체이기도 하다. 주와 이가 건너는 데이터의 바다는 공(空)으로 보이지만(이 장면의 바다는 의도적으로 컴퓨터그래픽의 모양새를 갖고 있다), 마지막 장면 주와 이가 맞이하는 바다는 실재의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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