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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움직인 사나이
2001-04-03

홍성기 감독, <열애>를 찍고 국산영화 보호육성책을 마련하다

<열애>를 찍을 당시, 홍 감독은 다른 일로도 몹시 바빴다. 54년부터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의 주도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종합촬영시설인 안양촬영소가 막 지어지고 있었는데, 홍 감독이 시설 자문을 맡은 것이다. 기공식에 이승만 대통령까지 참석해 화제가 되었던

이 촬영소는 3만평의 대지 위에 각각 500평과 350평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촬영, 현상, 편집, 녹음 등 영화작업을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동양 최대의 시설이었다. 미국의 자본금이 대거 유입된 촬영소 제작 이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막강한 후원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홍찬은 ‘부자(父子) 사이’로 불릴 만큼 관계가 돈독했다. 그런 홍찬이었기에 막대한 차관을 어렵지 않게 들여올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산영화 제작환경 개선에 일조하는 정책을 많이 폈다. 그중에는 입장세법을 개정해 국산영화 관람시 전면적인

입장세 면세 조치를 내린 일도 있었다. 이러한 국산영화 보호육성책의 마련에는 홍성기 감독의 발언이 크게 작용했다. 입바른 말 잘하기로 소문난

홍 감독은 이 대통령에게 직접 면세조치에 대한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촬영소 시설 자문단에는 홍성기를 비롯해 기획자 유한철과 허백년이

있었다. 유한철과 허백년은 촬영소 1기 연수생이기도 했는데, 이후 연수생들이 모여 만든 첫 영화 <생명>(이강천 감독, 1958)을 기획한다.

어쨌든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촬영소 건설은 순조롭게 이뤄진다. 홍찬은 이후 안양촬영소의 운영권을 홍 감독에게 맡기나, 얼마 못 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으로 인수된다. <열애>를 찍으면서 홍 감독은 염매리와 스캔들에 휩싸였는데, 이 둘은 제법 심각해서 결혼설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던 홍성기의 형이 배우와의 결혼을 극구 반대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나중에 홍 감독의 형은 이 일을 미안하게

생각해서 김지미와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순순히 교제를 허락한다. 그러나 김지미와의 결혼이 순탄치 않은 길을 걷자 누구보다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

<애인>을 찍을 50년대 중반에는 세트장을 만들 촬영소가 없었기 때문에, 큰 창고를 빌려 촬영소 대신 사용했다. 홍감독 역시 지금의 남대문

경찰서 뒷쪽에 있었던 '희경창고'를 빌려 <애인>의 실내 촬영분을 마쳤는데, 창고의 천장이 낮아 조명을 설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같은 풍토는 60년대 후반 가벼운 조명기의 개발로 인해 일반 가정집을 빌려 촬영하는 오픈세트 형식으로 발전한다. <애인>의 촬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홍 감독은 현장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원체 젊은 나이에다 풍류를 즐기는 사람인지라 촬영 중간에도 금세 자리를 비우고

당구를 치거나 술을 먹으러 가곤 했다. 한번은 감독이 자리를 비운 새에 내가 편집을 해놓은 적이 있었다. 감독이 돌아와 내가 한 일을 보더니

뒤통수를 때리며 혼을 냈다. 그러나 감독이 자리를 비울 때면 나는 어김없이 편집에 손을 댔고, 감독은 네 번째까지는 뒤통수를 때리며 혼을

내더니 다섯 번째부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괜찮다는 신호였다.

홍 감독은 현장에서 누구에게든 반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특히 배우들에게는 깍듯한 존대어를 쓰며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는데,

그만큼 배우들도 홍 감독을 좋아하고 따랐다. 지금은 감독이나 스탭이 배우들을 ‘모시는’ 입장이지만, 그땐 감독과 촬영기사의 말 한마디면

배우들이 쩔쩔매던 시절이었다. 개런티 역시 감독이 200만∼300만환 정도로 가장 많이 받았고, 촬영기사가 150만환 정도를, 배우는 그것보다도

더 적게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만큼 감독이 감독으로서 대접받고 행세하던 때였음에도 홍 감독은 여전히 자신은 ‘2인자’고 스탭과 배우들이

‘1인자’라고 치켜세우곤 했던 것이다. 홍 감독은 <애인>이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제작자들이 앞다퉈 다음 작품에 대한 투자방안을 내놓자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치기 시작했다.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이 크게 성공을 거두자 영화계에는 사극 붐이 일었고, 홍 감독의 사극 <춘향전>의

기획도 이때부터 서서히 이루어진다.

구술 심우섭/ 영화감독·1927년생·<남자식모><운수대통> 등 연출

정리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