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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부인`의 아버지
2001-04-03

심산의 충무로작가열전 13 이문웅(1940∼ )

에놈쌍쉬엘? 대학을 막 졸업했을 즈음이다. 최루탄 연기에 눈물콧물 흘리며 신촌의 뒷골목을 달리던 나는 괴상한 영화포스터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에놈쌍쉬엘? 이게 뭐람? 그래도 명색이 불문과 출신인지라 금세 그 뜻을 헤아리고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색깔

있는 남자>를 잔뜩 멋부린 불어식 표기로 그렇게 써놓은 것이다. 떡대 좋은 미남배우 임성민과 야시시한 섹시녀 오수미의 대단히 도발적이고도

곤혹스러운 자태가 인상적인 포스터였다. 그 영화를 나는 아마도 위기철이나 공지영 같은 친구들과 함께 보았던 것 같다. 선정적인 카피만큼이나

성적인 흥분감을 선사해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배가 아프게 웃어대며 그 영화를 봤다. 당시 신촌의 신영극장이나 대흥극장에 죽치고 앉아

소주로 병나발을 불며 동시상영영화를 보는 것은 우리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탱크로 광주를 깔아뭉개며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폭압과 자유화라는 양날의 정책을 썼다. 교복과 통행금지의 폐지 그리고 두발자유화는

전두환 정권의 선물이다. 충무로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선물은 에로영화에 대한 검열 완화였다. 덕분에 80년대 초중반의 극장가는 갑자기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온 에로영화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의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에

맞서 돌을 던지고 밤에는 전두환의 자유화정책에 발맞춰 싸구려 에로영화를 보며 킬킬댔던 것이다. 그때 봤던 에로영화들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완전히 맛이 간 듯 뿅간 표정으로 헉헉대던 여배우들의 모습과 당시 유행어처럼 통용되던 그 야한 영화제목들만은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1983),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1984), <뼈와 살이 타는 밤>(1985)…. 위에 열거한

모든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이문웅이다.

이문웅은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다음 한때 영화전문지인 <국제영화>의 기자로 일했다. 시나리오에 뜻을 둬 극작가 이진섭의

문하생으로 수업을 받던 중 쓰게 된 데뷔작이 <황진이의 첫사랑>. 널리 알려진 대로 그 타고난 미모와 가무로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벽계수를

도취시킨 조선 중종 때의 명기 황진이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다. 성공적인 데뷔작이었음에도 이문웅은 한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못한다. 폐결핵

때문에 마산요양소와 도봉산 등지에서 장기간 외로운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이후의 재기작이 양정화 주연의

<흑녀>인데, 독립투사의 딸이 홍콩 국제갱단의 2인자로 성장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액션물로 당시로서는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다.

<내가 버린 여자>는 김수현의 원작을 각색한 것인데 이후 ‘무슨 무슨 여자’라는 영화제목을 하나의 유행처럼 만들 만큼 대중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26살의 수희가 365일 술을 따르고 몸을 팔아도 남는 것은 없더라는 뜻을 가진 는 70년대 중후반을 뜨겁게

달궜던 ‘호스티스영화’의 완결판. 유지인이 엄마의 병원비와 조카의 생활비를 위해 호스티스로 전락하는 여대생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애마부인>은 확실히 80년대적인 영화다. 그 이전까지의 이른바 ‘호스티스영화’라는 것들이 명분이나 희생 같은 것을 내세워

‘어쩔 수 없이’ 몸을 팔게 되는 수동적인 여인들을 다뤘다면, <애마부인>은 자신의 욕망에 도발적일 만큼 솔직하여 ‘스스로 기꺼이’ 성에

탐닉하는 능동적인 여인상을 제시했다. 안소영의 거대한 유방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대단한 흥행성적을 기록하여 이후 현재까지 13편의

속편이 제작되는 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매편 새로운 여배우를 픽업해 선보이곤 하는데 오수비·염해리·이화란·유혜리·진주희

등이 그동안 애마를 거쳐간 그리운(!) 이름들이다. 이문웅은 오리지널인 제1편 <애마부인>과 소비아를 기용한 <애마부인5>의 시나리오만을

썼고, 나머지 작품들에는 원안자로만 이름이 올라 있다. 그가 80년대 이후 오직 에로영화의 시나리오에만 매달려온 것은 아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혼자 도는 바람개비> 등은 모두 진지한 사회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캐릭터의 묘사와 작품의 완성도가 빼어난 수작들이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69년

정진우의 <황진이의 첫사랑>

1973년

정소영의 <흑녀> ★

1976년

박태원의 <성춘향전>

1977년

정소영의 <내가 버린 여자>

1978년

김기영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

1979년

이두용의 <지옥의 49일>

노세한의

1980년

김성수의 <색깔 있는 여자>

1982년

김기영의 <자유처녀>

정인엽의 <애마부인> ⓥ ★

1983년

김성수의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1984년

배창호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

1987년

김현명의 <키위새의 겨울>

1990년

하명중의 <혼자 도는 바람개비> ⓥ

1991년

조명화의 <탄드라부인> ⓥ

1994년

김성수의 <매춘5>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