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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영화를 체포하라?
2002-09-12

충무로 다이어리

나는 컴퓨터를 제법 능숙하게 활용하는 축에 속한다. 인터넷예매, 인터넷쇼핑, 이메일, 뉴스 검색 등은 물론이고, 금융업무는 모두 인터넷뱅킹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은행 갈 일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컴퓨터가 없으면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 지경이다. 아주 가끔은 컴퓨터 또는 인터넷 중독이 아닌지 진단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하드웨어에도 제법 눈을 떠 회사에 있는 컴퓨터끼리의 네트워킹에서 생기는 오류도 어렵지 않게 처지하고, 어떨 땐 전문가들도 갸우뚱하는 문제를 해결해놓고 스스로 ‘역시 순돌이 아빠’라며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게임과 ‘동영상’에는 취약하다. 게임은 정서적으로 잘 안 맞아서 원래 흥미가 없고, 동영상은 화면이 작고 대체로 화질이나 음향 상태가 나쁜데다가 다운로드받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게 질려서 큰 재미를 못 느꼈다.

최근 주변에선 때아닌 동영상 다운로드 바람이 한바탕 불었다. ‘소리바다 사건’으로 답답해하던 차에 속속 대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뒤늦게 곁눈질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소리바다로는 주로 음악 파일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새 프로그램을 쓰면서 동영상 파일 다운로드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가끔 사용 중인 컴퓨터를 슬쩍 훔쳐보면 이들은 ‘야리꾸리’한 제목을 단 이른바 ‘야동’(포르노나 이에 버금가는 야한 동영상을 이르는 은어)을 다운로드받고 있었고, CD로까지 만들어 돌려보는 게 영 마뜩찮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관심사가 야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약간 당황했다. 알고 봤더니 야동은 양념이고, 영화를 다운로드받아서 보는 데 잔뜩 흥이 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온라인에 떠도는 영화 파일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건 아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유명 영화는 물론이고 개봉을 앞둔 최신작까지도 어렵지 않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화질은 마치 DVD를 보는 듯했고, 친절하게 번역도 다 되어 있는데다가 자막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다운로드받는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있는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완벽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파일은 우리나라보다는 주로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리바다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인터넷 속성상 유통을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약간의 장비만 갖추면 편집이 가능하고, 비디오를 VCD로 만들거나 DVD 파일을 압축한 다음 이런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주고받는 일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영화는 야한 장면 일부를 편집해 야동으로 올려놓은 몇편 외 영화 전편을 담은 파일은 거의 없고, 설사 있더라도 상태가 워낙 나빠 파급력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영화 파일은 대개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캠코더로 찍은 파일이라 화질이나 음향이 아주 나빠 흥행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한다. 시사회 때 캠코더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영화 상영 중에도 관계자들이 객석을 감시하는 웃지 못할 신풍속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동영상 파일 인터넷 ‘불법 유통’이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영화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실제로 유통시킨 사람을 색출해서 사법처리 직전까지 갔던 일도 있다. 영화인회의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을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딱히 묘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영상 파일의 온라인 유통이 창작물에 대한 지적재산권과 직결된 첨예한 문제이고, 유통구조를 뒤흔들어 영화의 산업적 근간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절박한 문제이긴 하지만, 양방향 통신과 정보(자료) 공유가 속성이자 미덕인 인터넷 환경의 현실을 감안하면 ‘특단의 조처’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대안? 대책?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