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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두가지 시선(2)
2002-09-19

영화평론가 이효인과 정성일의 문제제기,혹은 딴지걸기

성냥팔이 少女의 再臨, 註解 無得無說分 第一정성일의(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주해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 버전 1)

정성일/ 영화평론가

성냥팔이 少女의 再臨이라는 映畵의 註解에 관한 (저의) 글에 接續하시겠습니까? No, 라고 對答하실 분들은 어서 빨리 옆의 페이지를 보아주시고 Yes, 라고 對答하실 분들은 以下를 읽어주십시오. 이 게임도 아니고 映畵도 아닌, 여기서 弄談하는 바를 그대로 돌려주자면,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사이버 世上에 여러분이 오신 것을 못내 可憐하게 여깁니다. 이 奇怪하고 難澁하며 橫說竪說하는 ‘액션 神秘劇’의 饒舌 속으로 들어오시기 위해서 몇 가지 規則을 지키셔야 합니다. 첫째, 성냥팔이 少女의 再臨을 그냥 市場의 規則에 맡겨서 죽게 내버려두어라. 그러나 그 映畵가 죽기 전에 張善宇의 사랑을 얻어라. (이 映畵에 관한 대부분의 이상한 글들의 짝사랑) 그래서 映畵가 죽더라도 觀客(또는 <씨네 21>을 열심히 읽으시는 讀者 수준의 映畵 愛好家 분들)이 映畵를 보고 나오면서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張善宇의 얼굴을 떠올리면, 또는 金剛經의 句節과 胡蝶夢의 이미지를 가슴에 품으면서 그래도 여기 深奧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暗示를 주거나 심한 症狀인 경우 自己催眠을 걸면 당신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win했거나, 아니면 다시 보러 오셔야 합니다. (또는 진 것 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그 전에 당신이 다른 談論에 이끌려 다른 映畵를 보러 가시거나, 또는 張善宇를 잊고 임은경 또는 강타를 보기 위해 오신 거라면 game over. 셋째, 성냥팔이 少女가 再臨하는 게임 안에서 ‘아주 후진 수준으로’ 카피한 할리우드 映畵들, <매트릭스>와 <툼 레이더>, <臥虎藏龍>(등등)과 저패니메이션을 떠올리시느라 金剛經과 胡蝶夢의 引用을 잊으시면 game over. 그러니, 보시기 前에 覺悟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또는 自暴自棄하셔야 합니다.

우선 당신이 아무리 기다리셔도 성냥팔이 少女는 안나오고 라이터 파는 少女만 나옵니다. 거기 없는 것을 있는 척 하고 보는 것, 그래서 처음부터 再臨해야 할 對象이 바꿔치기를 당했는데도 그렇다고 믿는 것, 그 자리에서 하지만 난 이미 다 알고 있는 걸, 하면서 스스로 이 게임의 知識 안에 자기가 있다고 중얼거리며 錯覺하는 것. 이 自問自答의 幻影術, 또는 스스로를 神秘化시키는 무시무시한 欺瞞. 映畵의 마지막 게임 스테이지에서 당신은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文章과 마주하시게 됩니다. (畵面에 飜譯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물론 金剛經의 如理實見分 第五에 나오는 구절에서 凡所有相 皆是虛妄을 빼먹은 글귀입니다. 빠진 대목은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을 보면 다 허망하니”입니다) 이제 여기까지 오시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 文章에 大悟覺醒 하셔서 다 容恕하고 慈悲가 넘치는 觀客으로서 成佛하시거나, 아니면 殺氣騰騰 해지셔서 映畵館을 나서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당신이 본 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어떤 말을 하는 것도 다 虛妄한 일이라고 말해야 할 때, 당신은 映畵館에서 무엇을 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倒錯症의 王國에 極樂往生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法도 秩序도 없는 場所에서 사실 거기 있지도 않은 것이 분명히 거기 있다고 스스로 假定을 세우고, 그 안에서 否定의 숨바꼭질을 벌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비어 있는 換喩의 텅 빈 구멍을 채워 넣으려는 애처로운 그대. 그렇기 때문에 金剛經이라는 어마어마한 法을 앞세워, 莊子의 이름을 내세워 이 映畵 어디에서도 어리둥절했던 自身의 자리에 대한 이름을 얻기 위해 마치 자기 스스로 見成한 듯한 저 뻔뻔하기 짝이 없는 幻想의 快樂을 抛棄하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의 陷穽은 아주 單純明快한 것이 됩니다. 당신은 이 게임도 아닌 것이 映畵도 아닌 성냥팔이 少女의 主人인 (그 個人이 아니라 法의 이름으로서의) 張善宇의 (게임의 形式으로 質問하는) 慾望을 滿足시켜주기 위해서 자꾸만 스스로 그 陷穽의 對象이자 原因인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를 쓰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의 자리를 抛棄하지 마십시오. 성냥팔이 少女를 만나거든 그냥 성냥을 팔라고 말하십시오. 金剛經의 간절한 하소연. 山是山水是水, 佛 在甚 處,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한가지 더. 이 映畵는 마지막에 두 가지 버전이 登場합니다. 저도 두 가지 버전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혹시) 나머지 버전이 關心있으신 분은 월간 <>지 10월호를 보시기 바랍니다. ( http://www.digitalma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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