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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시리즈 종영에 부쳐(2)
2002-09-21

안녕! 세기말의 아이콘이여

망가진 스컬리, 시리즈의 몰락

<X파일>은 다른 TV 시리즈와 유달리 차별성이 있었다. 드라마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제작 단계에서부터 남달랐다. 일반적으로 미국 TV 시리즈 제작체계는 매 편마다 제작 관여자가 다 다를 만큼 느슨한 반면, <X파일>은 집약적이고 가족적일 정도의 협력체제를 유지했다. ‘참여하면 영광과 보람, 그 대신 개고생’. 장소 섭외자 일트 존스의 명언이다. <X파일>의 제작자 크리스 카터가 첫 시즌부터 극장용 영화에서만 활약하던 특수촬영 전문가 맷 벡을 삼고초려로 영입했다는 뒷이야기는 완성도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X파일>도 드라마였고, 그 한계가 결국은 5년이 넘자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위기를 가져온 것은 결국은 드라마적 속성이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허풍이 쌓여 사실성을 잃어간다. <X파일>은 진실, 즉 정보를 누가 소유하느냐는 파워 게임의 재미를 쌓아가면서, 정작 ‘진실’은 공허한 말장난이 되어버렸다. 9년을 지내오면서 <X파일>은 수많은 변화 혹은 몰락을 겪어 왔지만, 마침내 주연 배우가 드라마를 포기하고 나가버리자 이야기가 주체를 못할 정도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새로 투입한 주인공들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도겟의 강직함과 레이어스의 애매모호한 성격은 멀더-스컬리의 단순 변주가 아니었다. 그러나 새 주인공을 띄워 주기 위해 남아 있는 이전 주인공 스컬리의 역할을 왜곡한 것이 문제였다. 스컬리는 멀더의 아이를 임신했고, 호르몬 변화 탓인지 지난 7년간 보여 주었던 성격을 버리고 남에게 짐만 되는 여자인물로 전락해 버렸다. <X파일>이 이루어낸 업적 중 하나, ‘남자 주인공과 대등한 여자 주인공’인 스컬리를 망가뜨린 것은 정말로 같은 제작진이 저지른 짓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스컬리는 단지 딴지 거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동등한 여자 파트너였다. 멀더가 없자 짝퉁 멀더 행세를 하는 스컬리는 실수 중의 대실수였다.

아무리 스컬리 역의 질리안 앤더슨이 뛰어난 연기자라고 해도 엉망이 되어 버린 대본을 상쇄할 수는 없었다. 도겟 역의 로버트 패트릭과 레이어스 역의 애너베스 기쉬가 아무리 앙상블 연기를 이룬다고 해도 스컬리가 그 모양이면 소용이 없다. 여러 가지 신빙성 있는 인터뷰를 보면 도겟과 레이어스 체제를 출범시킬 때만 해도 시즌 11 내지는 12까지도 염두에 두었지만 결국 시즌 9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멀더의 퇴장보다도 스컬리의 변질이 <X파일> 자체의 쇠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9년간의 대장정, 막을 내리다

망가진 스컬리, 쇠락한 시청률 이외의 또다른 X파일의 ‘망조’가 등장했다. 시대가 변한 것이었다. 이제 세기말을 넘어 2000년대 미국은 보수주의 시대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바뀌어 버렸다. 특히나 2001년에 일어난 9ㆍ11 사태는 미국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꿇으라면 꿇어야 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X파일>이 ‘멜로물’로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기본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절망을 기반으로 하는 드라마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1013 프로덕션의 제작진이 9ㆍ11 테러 반년 전에 발표했던 <X파일>의 스핀오프 드라마 <론건맨>에는 증인을 없애기 위해 증인이 타고 있는 비행기의 항법유도장치를 해킹, 세계 무역센터에 박아 버리려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이 정도의 제작진이 2002년의 보수주의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이다. <X파일>이란 한 우산 아래 모여서 즐길 수 있었던, 좋았던 시절은 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X파일>의 종영은 묘한 아쉬움과 허전함과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내 인생에 변화를 준 요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마음에 품고 싶을 만큼의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나는 자신있게, <X파일>이 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아이콘이며 내 인생을 바꿔준 터닝 포인트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X파일과 동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라 생각한다. 9년간의 수많은 배신 혹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닫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아쉽다. ‘시들기 전에 장미꽃을 모아라’라는 로버트 헤릭의 시가 실감이 나고, ‘엘비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멤피스를 걷는 것이 꿈만 같다’는 셰어의 노래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9년간의 짧고도 긴 세월을 마무리한다. 꼭 끝을 보아야만 할까? 끝은 있는 법이고, 지금이 그때인 것은 틀림없다. 이 드라마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전의 영광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9년간의 대장정에, 내 인생의 한 이정표에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고마워요, X파일.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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