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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시도>로 스필버그와 돌아온 성룡 “진짜 드라마 있는 영화가 꿈이에요”
2002-09-25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거리, 75년 된 차이니즈 극장에 은은한 불이 들어왔다. 박스오피스 정상을 노리는 할리우드의 중요 블록버스터 첫 시사회가 열리는 밤이면, 수백m 도로가 차단되고 포토라인이 쳐지는 곳이다. 지난 18일 저녁에도 양쪽 도로를 메운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키! 재키!” 20여년 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던 홍콩의 배우 재키 찬(청룽, 성룡)이었다.

스필버그 “당신에겐 ‘턱시도’가 딱이다”

“어제 영화 재미있었어요” 19일 한국기자들을 만난 재키는 “영화를 만들면 아시아 팬들의 반응부터 궁금하다”며 한국어로 인사말(물론 그 이상은 힘들다)을 건네왔다.

그의 이번 영화는 드림웍스의 <턱시도>다. 로스앤젤레스의 ‘총알 택시’ 운전사 지미 통은 정보기관 최고의 비밀요원 클락 데블린의 운전수로 스카웃된다. 전자동 방어시스템이 갖춰진 신비로운 ‘턱시도’가 데블린의 비밀병기다. 몸으로 하는 재키의 액션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와이어 액션과 컴퓨터그래픽이 적잖이 등장하는 <턱시도>가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재키 찬이 보여주는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와 춤, 특유의 무술 연기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어느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전화를 해왔다. 만나러 갔더니 문을 열자마자 스필버그가 ‘내 아이가 팬’이라며 사인부터 해달라더라. 사인을 해주며 ‘어떻게 공룡과 사람이 함께 걸어다니는 영화를 찍냐’고 물어봤더니 ‘굉장히 쉽다, 이 단추 저 단추 꾹꾹 누르면 된다’고 대답하는 거다. 이번엔 스필버그가 ‘재키, 당신은 어떻게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날아다니며 연기를 하느냐’고 묻길래 ‘그건 더 쉽다, 롤링! 액션! 점핑! 컷!이 전부’라 말해줬다.” 4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너지와 유머가 넘쳤다. “스필버그가 멋진 아이디어가 있는데 ‘턱시도’가 나에게 딱이라 말하더라. 처음엔 입는 턱시도인 줄 알았다.”

동양의 꼬마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6살 때 경극학교에 들어가 스턴트맨이 될 운명이었던 그는 ‘제2의 리샤오룽(이소룡)’으로 영화계에 들어와 그의 액션 연기와는 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70년대 후반 이미 아시아의 스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81년 <캐논볼>을 위해 할리우드에 왔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동양의 꼬마’였다. “홍콩에서 왔다 하면, 일본의 한 지역이냐 물을 정도였다. 어쩌다 알아보는 사람은 여자친구가 중국인이라 당신의 영화를 봤다는 사람 정도였다.”

홍콩으로 돌아가 그는 <프로젝트 A><폴리스 스토리> 등을 꾸준히 자기식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95년 <홍번구>는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첫 홍콩영화가 되었다. “이젠 ‘재키 식 영어’를 해도 할리우드가 먼저 날 부른다. 실패 이후에도 재키식으로 꾸준히 영화를 만든 것, 그것이 내 첫번째 성공요인이다. 또 다른 요인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미국의 새로운 세대들이 어려서부터 내 영화를 비디오로 본다는 점이다.”

영화 뿐 아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미국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재키 찬 어드벤처>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다.

“언제나 변하고 싶다”

요즘 그의 활동은 연기와 제작쪽으로 중심이 옮겨져 있다. “감독을 맡으면 일단 시간이 걸린다. <미라클> 찍는데 1년 반, <프로젝트 A>는 9개월이 걸렸다. 배우를 하면 1년동안 3편은 찍을 수 있다. 난 더이상 젊지 않다. 은퇴하기 전 더 많은 영화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물론 꿈이 있다. 진짜 드라마가 있는 영화를 하는 것이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나 <글래디에이터> 같은 영화도 왜 못하겠는가. 물론 죽어도 해안가에서 여자들과 슬로우 모션으로 뛰어다니며 키스하는 영화는 못 찍겠지만….”

그는 “변하고 싶다”를 반복해 말했다. 뉴욕에 가서 앙리(이안) 감독을 만나고, 베이징에 가 장이모우 감독을 만나 새 영화를 의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폴리스 스토리 1, 2, 3… 관객들은 좋아하지만, 나에겐 너무 괴롭다. 나는 변하고 싶다. 이번에 <턱시도>지만 차기작 나 <샹하이 나이트>는 또다른 캐릭터다.”

재키의 소박함과 에너지는 만나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마력과 같은 듯 했다. <턱시도>의 케빈 도노번 감독과 주인공인 제니퍼 러브 휴잇도 인터뷰 내내 재키의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스튜디오와 예산과 일정문제로 감독이 힘들어하면 재키는 감독에게 “힘내라”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