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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 김현석 감독이 쓴 제작일지·야구일기(4)
2002-09-25

스포츠에 감동받소? 각본있는 드라마 만들기가 더 힘드오

◆ 2002년 8월~ 9월, 명필름 지독하다

2002년 8월2일

촬영이 끝나면 숨 좀 돌릴까 했는데, 바로 편집작업에 들어가다. 지방 촬영을 가 있는 동안 김상범 편집감독님이 작업을 해놓으셔서 순서편집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25분 분량의 순서편집본이 나왔다. 순서편집에서 3시간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감안하면 정말 양호한 길이라고 자평하면서도, 혹시 이야기 구조가 허술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들다.

2002년 8월25일

108분짜리 H편집본을 마지막으로 편집을 완료하다. E, F, G, H본은 매일 한번씩 보고 고쳤다. 역시 명필름 지독하다.

2002년 9월1일

예상했던 바지만, 녹음작업도 쉽지 않다. 현장에서 잡은 음향들을 쓸 수가 없다. 대부분의 신의 효과음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집어넣을 소리가 마땅치 않다. 새소리, 벌레소리, 개소리 등을 번갈아 넣어보지만, 신들을 연결해서 보니, 그 소리가 그 소리 같다. 믹싱을 맡은 블루캡에서는, 그래도 신별로 다른 종류의 새가 지저귀는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개들도 다른 종류의 개들이 짖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이 신에선 진돗개가 울고, 다음 신에선 풍산개가 울고…? 사극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2002년 9월3일

이 역시 예상했던 바지만, CG작업도 만만치 않다. SF영화도 아닌데, 70컷의 CG가 들어간다. 스타일상 CG가 필요한 것도 있지만, 작은 규모의 세트를 보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찍힌 현대식 건물을 지우기 위해, 그리고 야구공을 원하는 위치에 심기 위해 CG가 쓰인 경우도 있다. 오프닝 시퀀스나, 호창이 학을 만나는 장면 등은 너무 만족스럽지만, 카메라를 7대 동원해서 찍은 호창의 홈런 타격 컷에 대해서는 사전에 더 충분한 의사소통과 고민이 필요했던 것 같다. 모팩 장성호 실장이 같은 교회 형제이기에, 혹 남게 될 아쉬움은 신앙(!)으로 극복하리라.

2002년 9월5일

고심 끝에 최종본에서 액자구조를 덜어내다. 그 바람에 러닝타임이 104분으로 줄었다.

2002년 9월11일

미국영주권자인 음악감독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출국명령’이란 것을 받은 상태로, 출국 몇 시간 전까지 블루캡에서 음악을 만지다. 좀더 서둘러 작업을 했었더라면, 그가 9·11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최소 60일 뒤에야 돌아올 수 있다고 하니, 음악감독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기 위해서라도 장기 상영이 이뤄져야 한다. 괜히 비장해진다.

2002년 9월12일

애초에 백은하 기자가 원고를 청탁하면서, 야구영화인 만큼, ‘야구 형식’으로 써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이 영화를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걸린 3년 동안 있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史觀의) 주요 야구사를 곳곳에 삽입하는 식의 ‘무늬만 야구 형식’을 띠었다. 더구나 올해의 경우엔 촬영 때문에 야구소식에 민감하지 못해 많은 부분의 야구사가 누락돼 있다. 내일부터 본 믹싱이 시작되니, 이제 영화의 완성까지는 1주일 정도의 공정이 남아 있다. 3년 전 <한국야구사>에서 처음 만났던 100년 전 최초의 야구단들이 비로소 스크린 위로 뛰쳐나오는 것이다. 100년 전 그들이, 힘들어하는 조선인들에게 힘을 줬듯, 100년 뒤에 나오는 영화 <YMCA야구단> 역시, 고단한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줄 수 있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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