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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 김현석 감독이 쓴 제작일지·야구일기(3)
2002-09-25

스포츠에 감동받소? 각본있는 드라마 만들기가 더 힘드오

◆ 2002년 1월~4월, 연습을 빙자해 야구한다

2002년 1월27일

시나리오 최종본 완성. 공식적으로는 14고다. 8고가 11월에 나왔으니, 마지막 2달은 거의 1주일에 한번씩 수정을 한 셈이다. 무척 만족스럽다. 무엇보다도 분량이. 가장 길었던 버전과 비교하면 30% 정도 슬림해졌다.

2002년 2월

콘티작업 시작하다. 사극이지만, 현대적인 화법으로 보여주자는 원칙하에 컷을 나누다보니 1천컷 정도 나온다. CG컷도 꽤 된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던 이규희의 도움으로 만화책 같은 콘티를 만들어간다.

2002년 2월14일

여자주인공 정림 역으로 김혜수씨를 캐스팅하기 위해 마련된 식사자리. 시나리오에 호감을 갖고 있던 그녀에게 정림의 캐릭터 보강 계획에 대해 얘기하며 설득하다. 중학생 때 김혜수 사진 코팅해서 모았었다는 얘기는 안 하는 건데 그랬다.

2002년 2월17일

야구단의 막내인 쌍둥이 형제로 량현량하를 확정함으로써 야구단 캐스팅이 완료됐다. 가수활동을 쉬는 동안, 량현량하의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다.(이제 촬영 끝났으니 무럭무럭 자라거라!)

2002년 2월

겨울장면을 위해 정식 크랭크인을 2달 앞두고 1회차 촬영을 하다. 올 겨울 유난히 따뜻해서 얼어붙은 저수지를 찾느라, 남한 최북단 철원까지 가게 됐다. 100년 전 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느라, 소와 달구지를 얼음 위에 올려놨는데, 소가 한 걸음 뗄 때마다 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나서 겁먹었다.

2002년 2월

서울대공원에서 CG 합성을 위한 학 소스 촬영을 하다. 동물은 통제가 안 돼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필름을 8천자나 준비했는데, 400자 한통 반 만에 원하는 동작을 모두 찍어내버렸더니 이우정 PD의 입이 찢어진다. 촬영을 마칠 무렵, 스트레스를 받은 학이 우리의 철망에 머리를 들이받아서 스탭들 모두 긴장했다. 학 1마리에 1억원 가까이 된다는 말을 뒤늦게 들은 이우정 PD의 뺨에는 식은 땀이 흐른다.

2002년 3월9일

3차 리딩. 1, 2차 리딩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특히 광태 역의 황정민이 많이 좋아졌다. 야구단원이면서 대사 한마디 없는 최덕문은 리딩에 참여하지 못한 연기자들의 대사를 기꺼이 대신 읽어준다. 고맙다.

2002년 3월

영화의 주무대인 YMCA 회관을 놓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다. 전주향교. 건물도 건물이려니와, 마당에 뿌리박은 지 500년은 족히 된 듯한 은행나무가 날 감동시킨다.(이 장소를 찾아낸 제작부 직원에게 포상휴가를 준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 확인을 못해봤다.)

2002년 3월21일

호창 부자가 대화하는 장면을 경주 양동마을에서 찍다. 아직 정식 크랭크인 전이지만, 배경이 겨울인지라, 더 미룰 수 없다. 은근히 웃긴 신인데도, 신구 선생은 가벼운 웃음 한번 흘리지 않으신다. 원래 그런 분이라고 송강호씨가 귀띔을 한다.

2002년 3월23일

예산서상의 순제작비가 37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사극이 돈 많이 드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이우정 PD의 말에 따르면, 너무 큰 예산 때문에 그 당시 영화를 엎으려고도 했단다. 원래 농담 재미없게 하는 양반이지만, 그 농담은 특히 그랬다.)

2002년 3월25일

연기자들과 함께 2주째 야구연습을 하고 있다. 100년 전 야구인 만큼, 요즘 선수들처럼 잘할 필요는 없지만, 연기의 자신감을 위해 연습은 필요하다… 는 명분하에 매일 모여서 야구하고, 술먹고 논다.

2002년 4월11일

3주간의 야구연습이 끝나고, 영화홍보를 겸한 대학 야구동아리와의 시합이 있었다. 드디어 선동열을 만나게 되다. 감독의 위엄도 있고 해서, 좋아하는 내색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나중에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을 보니, 입이 귀 밑에 붙어 있다. 시합에선 6-3으로 졌다. 그래도 연기자들 실력 많이 늘어서 뿌듯했다.

◆ 2002년 4월~7월, 한 점이 되어라

2002년 4월22일

공식 크랭크인. 고만고만한 촬영을 몇번 나가서인지 별로 떨리지 않는다. 예정된 22컷을 다 찍었다. 카메라 2대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빠른 속도다.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을 거치게 했던 명필름의 숨은 뜻을 이제야 알겠다.

2002년 4월30일

비 때문에 몇번의 촬영이 취소된 것말고는 별 어려움 없이 촬영은 순항 중이다. 밤마다 숙소에서 연기자들과 스탭들의 쿵쿵따 게임이 이어지고, 몇몇은 달인 수준이 되었다. ‘스위스-스웨덴-덴마크-크롬웰-웰치스’를 5번쯤 돌린 적도 있다.

2002년 5월12∼14일

정림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을 찍는다. 그동안 낮신이 많아서 지루해(?)하시던 임재영 조명감독님의 기술이 빛을 발한다. 3일 동안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비가 내린다. 다행이다. 찍은 컷들을 현장편집기로 붙여봤는데, 썩 맘에 든다. 이번 밤 촬영의 반은 모니터 앞에서 졸았던 것 같은데, 이런 훌륭한 장면이 나오다니…. 나는 과연 이 영화에 필요한 사람인가?

2002년 5월22일

공식 크랭크인 한달 만에 20회차를 찍었다. 지방 촬영장소로의 이동시간을 고려한다면 거의 매일 찍는 강행군이다. 잠시 서울에 올라와서, 편집실에 들러 중간편집을 해보다. 김상범 편집감독은 좀더 웃겨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고민이 된다.

2002년 6월3일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일본과의 결전 장면을 찍기 위해 전북 임실에 내려오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강의 지류가 닿는 최적의 장소에 100년 전 야구장을 지었다. 촬영에도 딱이지만, 물론 야구하기에도 딱이다. 매일 5시경에 찰영을 마치고 해질 때까지 야구한다. 행복하다.

2002년 6월13일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200여명의 엑스트라들에게 시대의상을 입히고, 수염을 붙이고 분장을 해야 하는 의상, 분장팀들을 보면 너무 안쓰러워서 함부로 농담도 건넬 수 없고, 쿵쿵따 하자는 얘기는 더더욱 못 꺼낸다.

2002년 6월15일

김주혁이 오후 내내 고생했다. 대현이 홈으로 슬라이딩하는 장면을 각기 다른 앵글로 찍다보니, 수없이 넘어지고, 먼지를 마시고 그랬다.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대현의 캐릭터로 고민을 했는데, 일본과의 1차전과 2차전에서 대현이 나름대로 멋있게 형상화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2002년 6월16일

광태(황정민)가 대현을 보내주는 장면을 찍는다. 코믹캐릭터인 광태의 정극 연기가 나를 울린다. 애초에 황정민이 원했던 배역은 대현이었는데, 그가 대현의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2002년 6월18일

전국이 월드컵 광풍에 휩싸여 있다는데, 이곳은 광풍까지는 아니고 미풍 정도다. 한국전이 있을 때마다 숙소의 가장 큰 방에 스탭들과 연기자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을 외친다. 안정환이 결승골을 터뜨려 한국이 8강에 올라갔다. 좋으면서도, 조금 걱정이 된다.

2002년 6월22일

임실 촬영 마지막 날. 공교롭게 스페인과의 8강전이 오후 3시 반에 열린다. 스탭들이 슬슬 프로듀서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CG촬영을 위해 카메라 7대가 현장에 도착해 있으니 어찌하랴! 촬영 틈틈이 카메라 모니터로 중계를 본다. 말도 안 된다. 한국이 4강에 올라갔다. 이제 야구소식은 스포츠 신문에서 7∼8면에 가서야 나온다. 우리 영화에는 악재일 수 있다. 어쨌든 16일간의 임실 촬영이 끝났다.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연기자들의 주제가가 <연>이었단다. ‘한 점이 되어라!’ 16일 동안 워낙 ‘점’ 연기가 많아서 그렇단다. 연기자들이 점처럼 작게 나오는 장면들이 많았다는 얘기.

2002년 7월3일

가장 힘든 임실 촬영이 끝나고나니, 남은 촬영은 부담이 없다. 호창과 정림이 에펠탑과 다보탑에 대해 얘기하는 신을 찍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신이다. 한번에 오케이가 났다. 두 사람은 외모는 물론이고 연기의 스타일도, 삶의 방식도 다른데, 나란히 있으면 이상한 조화를 이룬다.

2002년 7월23일

불국사 촬영. 밤 촬영을 불허해서, 낮으로 설정을 바꿀 생각도 했었지만, 분위기를 고려해 데이 포 나잇(낮에 밤장면 찍기) 기법을 쓰다. 나는 물론이고, 박현철 촬영감독님도 실전에서는 써본 적이 없어 불안했지만, 임재영 조명감독을 믿고 강행했다.

2002년 7월28일

드디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을 돌며 한 60회의 촬영이 끝났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쫑파티에서 연기자들이 ‘한 점이 되어라! 한 점이 되어라!’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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