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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 김현석 감독이 쓴 제작일지·야구일기(1)
2002-09-25

스포츠에 감동받소? 각본있는 드라마 만들기가 더 힘드오

때로 감독들의 머리 속에 심어진 문장 한줄은 무럭무럭 자라나 한편의 영화로 둔갑한다. 고려사의 한 행이 <무사>의 모티브가 되어 장대한 이야기를 키워낸 것처럼, ‘져야만 뉴스거리가 되던’ 100년 전 황성YMCA 야구단의 기록 한 페이지는 야구팬 김현석 감독의 글러브를 통과해 영화가 되어 나왔다. 10월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YMCA야구단>이 홈베이스를 밟기까지, 먼지 풀풀 날리며 운동장을 뛰고 굴러온 3년의 기록을 감독이 보내왔다. 송강호 김혜수, 달라진 두 배우도 만났다.편집자

◆ 99년, 선동열이 안중근이고 이종범은 김구고

1999년 5월

박찬호, 메이저리그 사상 초유라는 ‘한 이닝 연타석 만루홈런’을 허용하는 등 데뷔 뒤 최악의 부진에 빠져 있다.

1999년 6월2일

<한국야구사>라는 책의 출간기념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봤다. 야구애호가로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야구에, 그것도 한국 야구에 무슨 ‘역사’냐?

1999년 6월3일

그래도 문득 호기심이 동해서 서점에 들렀다. 궁금했다. <한국야구사>는 역사 서가에 꽂혀 있을까, 스포츠 서가에 꽂혀 있을까…. 어느 곳에도 꽂혀 있지 않았다.

1999년 6월4일

요즘 선동열의 직구 위력이 예전만 못하다. 아무래도 올해가 그의 투구를 보는 마지막 해일 듯하다.

1999년 6월5일

양재동에 있는 KBO 사무실로까지 찾아가 <한국야구사>를 구입하다.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일단 가격, 5만원이다. 그리고 두께, <새우리말 큰사전> 상권보다는 두껍고, 상하권 합쳐놓은 것보다는 얇다.

1999년 6월6일

밤새 <한국야구사>를 뒷부분부터 읽다. 선동열, 백인천 등이 한국사의 정약용이나 안중근처럼 다뤄져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지만,‘한국 야구에 무슨 역사냐?’라고 비웃었던 사실이 미안할 정도로, 저자들의 기술 태도는 진중하고 사관(史觀)은 깊이있었다. 한국사라면 고조선에 해당할 부분에서 멈춘다. 낯익은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 최초의 야구시합’ 하는 식의 제목을 단 그 사진은 중학교 체육 교과서쯤에서 봤던 것 같다. 짚신을 신고, 무명저고리, 무명바지를 입은 채 엉성한 폼으로 방망이를 들고 있는 이의 모습. 그뒤로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채 구경하는 이들의 모습. 최초이자 최강의 야구단이었던 황성YMCA에 관한 다음의 기술은 내 마음을 확 잡아당겼다.

˝황성YMCA가 다른 팀을 꺾는 것은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져야만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韓國野球史>(대한야구협회·한국야구위원회 공동간행, 1999년, 84쪽)

김성수 감독은 고려사를 읽다가 “… 중국으로 건너간 사신들 중 몇은 돌아오지 않았다…”라는 한줄의 문장을 보고 <무사>를 구상하였다고 한다.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 나도 유사한 과정을 거쳐 영화의 모티브를 잡은 것이다.

1999년 6월20일

한국 최고의 유격수였던 이종범이 타국에서 2할5푼에도 못 미치는 타율의 평범한 외야수로 전락한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가슴아프다. 게다가 <한국야구사>에서는 그가 김구 선생급으로 기술되고 있단 말이다.

1999년 6월29일

<공동경비구역 JSA>의 각색작업을 마치고,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이은 감독과 얘기를 나누다가 YMCA야구단을 소재로 데뷔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부부에게서 각각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또 야구냐?”, “재미있겠다!” 어느 쪽이 누구의 대답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1999년 7월

이승엽, 장난 아니다. 이러다가 아시아 홈런기록(왕정치 55개)까지 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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