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사람들
<도둑맞곤 못살아> 푸드스타일리스트
2002-10-02

눈으로 즐기는 진수성찬

이 사람의 가방을 열어보자. 붓, 핀셋, 주사기, 분무기…. 화가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다. 의사도 아니며 물론 미용실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가방의 주인은 바로 푸드스타일리스트 김경미씨. 조리부터 세팅까지 ‘음식의 각’을 잡아주는 음식디자이너다. 비록 미맹이지만 누가 봐도 침이 꼴닥 넘어가게 멋진 음식을 차려내는 <도둑맞곤 못살아>의 ‘비운의 주부’ 송선미. 그가 차린 화려한 식탁이 바로 김경미씨의 작품.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이 영화 내내 필요한 작품이었지만 딱히 참조할 만한 영화도 없고 선례들도 많지 않던 상황이어서 결국 그는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레시피로 삼았다. 그렇게 색깔과 질감이 비슷해 반건조오징어를 사용한 기상천외한 음식 ‘돼지귀 초밥’이, 구워낼 몰드가 없어서 스티로폼을 잘라서 그 위에 크림을 얹고 인공설탕가루로 마무리한 지름 50cm가 넘는 대형케이크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10분 찍기 위해 10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촬영이나, 정성스럽게 준비한 카나페 위로 카메라가 휙, 훑듯이 지나간다거나, 촬영비율에 안 맞는다고 이것 빼라, 저것 빼라, 했을 때는 어찌 속상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과정들이 “신선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우연히 들어선 길이 제대로 된 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것을 즐겼지만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저 대학을 갈 거라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리과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를 꿈꾸게 되었다. 졸업한 뒤에는 호텔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고, 일본????우리말로 해주세요(JFCS)로 연수도 다녀왔고 1년 정도 어시스트생활을 거쳐 지난 2000년 9월에 동료 3명과 푸드스타일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ARANCIA를 차렸다. 일도 하고 강의도 나가는 한편 마지막 논문을 남긴 학생 신분인 그는 지난 몇년을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다. 푸드잡지는 기본이고, 푸드채널, CF, 이번엔 영화까지 밤낮없이 일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사서 고생한 부분도 없지 않아요.” 바로 책에도 없고 정답도 없는 노하우들은 “오로지 체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의 컬러대로 찍으면 검은 간장처럼 보이는 콜라에 물이나 사이다를 타서 촬영한다거나,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상태를 연출하기 위해 커피물을 피자도우에 바른다거나 하는 것들은 현장에서 익힌 노하우. 또한 그의 도구가방 속 붓은 강한 촬영라이트 때문에 시들고 마르기 일쑤인 야채에 중간중간 기름이나 글리세린을 바를 때 사용하고, 핀셋은 조심스럽게 흐트러진 세팅을 잡아줄 때나 먼지나 오물 등을 떼어낼 때 이용되며, 주사기는 국물이 많거나 적을 때 빼내기 위해 사용된다.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해요.” 한식, 양식, 일식조리사 자격증에 칵테일, 다도까지…. 필수불가결한 사항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시간을 쪼개서라도” 배우고 익힌다는 그는 “다도를 배운 것이 설록차 광고를 찍을 때 요긴하게 쓰였고 광고주에게도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며 “어차피 보여지는 일이기 때문에 심지어 포토그래퍼나 촬영감독들과 또 다른 의미로 사진을 알고 앵글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미씨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다소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지금은 이 방면에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 하지만 그는 “거품도 많고 지나친 환상도 많은 편”이라며 “빨리 거품이 빠지고 정말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고보니 참, 욕심도 많고 재주도 많게 생긴 손이다.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