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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감독하기, 흥행만이 살길?
2002-10-04

며칠전 박광수 감독의 신작 <방아쇠>의 제작발표회가 서울 대학로의 한 라이브극장에서 있었다. 99년 개봉한 <이재수의 난> 이후 3년만이다. 그러나 박감독은 “그동안 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긴 그사이 단편을 2편이나 찍었고 <방아쇠>의 시나리오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했다.

아마도 오랜만이란 느낌이 들었던 건, 당시만 해도 최대의 제작비와 제작인원이 투입되었다던 대작 <이재수의 난>이 흥행에서 참패했던 기억 때문일 게다. 충무로에서 뒷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박 감독을 두고 “다시 영화찍기 쉽지 않을 것”이란 말까지 했다.

사실 한두편 성공으로 중견감독이 되고, 한 편 실패로 쉽게 ‘아웃’시켜버리는 한국영화계의 풍토에서 감독으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감독은 대작영화, 비디오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개척해나가는 일본영화계를 부러워하며 “한국에서 감독들은 작품 한편의 성공여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기도 했다.

<방아쇠>의 경우도 제작비 23억원 모으기도 녹녹치 않았던 모양이다. 올 봄쯤 시작하려던 촬영은 찬바람 부는 10월에야 시작된다. “제작비야 제작사에서 맡는 일이니, 난 모르지”하면서도 박감독은 “박광수 아∼ 머리아파, 뭐 그랬겠지”라며 웃었다. 최근 <보리울의 여름>을 찍고 있는 이민용 감독도 <인샬라>의 실패 이후 오랜 세월 침묵을 지켜야 했다.

최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행참패 책임을 장선우 감독에게 돌리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씁쓸했던 것도 이런 우리 영화계의 풍토 때문일 것이다. “흥행 책임지려면 제작을 하지, 감독하나”는 한 감독의 말이 단순한 ‘항변’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