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해외뉴스
한석규 새영화 <이중간첩> 체코 촬영현장 - “해볼만한 작품 3년만에 낙점했죠”
2002-10-04

<텔미섬딩> 이후 햇수로 꼽아 4년만이다. ‘흥행 보증수표’치고 ‘휴지기’가 엄청나게 길었다. 한석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바로 그가 내년 1월 개봉될 영화 <이중간첩>에서 남과 북의 ‘이중간첩’ 림병호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지난 2일 새벽(한국시각) 체코공화국 프라하 시내의 한 호텔 식당. 까칫까칫 수염이 돋고 조금 야윈 얼굴의 한석규(38)씨가 김현정(29) 감독과 함께 나타났다. “이곳 프라하에 500년 된 맥주집이 있다던데요, 저는 술을 못하지만.” 이 활달한 설레발은 이 영화로 데뷔하는 새내기 감독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인 듯했다(김 감독은 이날 ‘긴장한 듯’ 말수가 참 적었다).

위장귀순 남파간첩 림병호는 1980년대 북한 대남밀봉교육초대소 최우수 요원이었고, 남쪽에선 정보기관 요원으로 일하다가, 결국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으로 도망가는 인물이다.

한씨를 포함해 <이중간첩> 제작·출연진이 프라하를 찾은 것은 1주일 일정으로 영화의 도입부, 곧 림병호가 통일독일 이전의 동베를린을 통해 귀순하는 8분짜리 장면을 찍기 위해서다. 프라하 도심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홀쇼비체는 별칭이 ‘리틀 베를린’. 이곳에 동·서 베를린 경계에 있는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가 1980년대의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제작진은 “베를린보다는 오히려 프라하가 독일식 건물 등 모든 면에서 80년대의 베를린과 흡사하기 때문에 촬영지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림병호는 제3국 행을 결행한다는 점에서 <광장>의 이명훈을 연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석규씨 말마따나 그는 “자기 사상에 회의하는 회색분자는 아니”다. 그런데 한씨의 림병호 해석은 ‘혁명전사의 매서운 눈빛이 여성 고정간첩 윤수미를 만난 뒤 흔들리게 되는 인물’이라는 애초 시나리오와는 미세하게 다른 듯했다. 한씨의 분석에 따르면 “일말의 동요가 없는 건 아니지만” 림병호는 사회주의 사상에 투철한 혁명전사다.

“다만 도망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서 제3국으로 가는 인물, 대한민국 말고는 있을 수 없는 인물!” 한석규가 말하는 림병호의 매력이다.

그러면 한씨는 왜 그리 오래도록 영화를 쉬었을까.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부담 새로운 연기에 대한 중압감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맘에 드는 작품을 고르다 보니…. 영화에 대한 저만의 생각이 있잖겠어요. 제가 했던 여덟 작품, <닥터 봉>에서 <텔미 섬딩>(99년 11월 개봉)까지가 저의 ‘영화 관(觀)’이랄 수 있는데요.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훌러덩 지나가버렸슴다.”

그 3년 동안 1년에 30여편의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지난 4월께 그는 <이중간첩>으로 ‘휴지기’를 끝내기로 했다. “<이중간첩>은 해볼 만한 작품, 꼭 해야 할 이야기라고 봤어요.” 림병호를 연기하려고 그는 평소 몸무게에서 4~5㎏을 뺐다. “아무래도 샤프하고 날카로운 인물 아니겠어요” 그는 또 실제 귀순한 북한군 출신한테서 3주 정도 북한 무술을 배우기도 했다. “복귀 소감요 긴장되죠. 복잡하기도 하고요.”

딸 둘(4살, 2살)을 둔 그는 취재진에게 “셋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알리며 다시금 강조했다. “<이중간첩>을 하려고 3년여를 쉬었습니다.” 그의 출연료는 4억5천만원+알파(러닝개런티)다. 상대역인 윤수미 역은 고소영(30)씨가 맡았다.

●‘이중간첩’ 어떤 영화인가

<이중간첩>은 1980년대 초 냉전기를 배경으로, 위장귀순한 남파간첩 림병호의 3년 동안의 행로를 그린다. 림병호가 결국 연민에 가까운 사랑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고정간첩 윤수미와 함께 제3국으로 도망하게 되기까지의 ‘드라마’인 셈이다. 림병호는 귀순의 위장 여부를 가리려는 남한 정보기관의 고문 등을 견뎌낸 뒤, 안기부에서 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위장’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무고한 유학생을 고문·훈육함으로써 남한내 고정간첩 총책 송경만 사건을 엮어내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김 감독은 말하자면 ‘첩보 멜로물’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를 “스릴러나 액션이 아니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좌절의 드라마”로 그려내겠다고 했다. 쿠앤필름과 한씨의 형 선규씨가 대표로 있는 힘픽처스가 총 제작비 43억원을 들여 공동제작하며, 설밑인 내년 1월24일 개봉할 예정이다.

프라하/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