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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야구단> 사운드 맡은 ‘국보급’ 사운드 수퍼바이저 김석원 스토리 (3)
2002-10-04

제3의 대사, 소리를 쓰다듬는 남자

소리를 깎고, 만지고, 섞는다

<유령> 역시 그가 진땀을 뺀 영화 중 하나다. 거개가 세트 촬영이었으니 현장의 노이즈 중 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곽지균 감독이 <심연>이라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을 당시 진해에 가서 잠수함 시뮬레이션을 경험해본 것이 사전지식의 전부였다. 오죽 답답했으면 “마누라 빌려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크림슨 타이드>의 제작진을 찾아갔을까. 그들이 고가의 매물로 내놓은 사운드가 상투적인 것임을 확인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불쑥 오기가 생겼다. “그래 직접 해보자.”

풀장에서 녹음한 소리를 이퀼라이저를 이용해서 깎아내고 다듬어서 심해의 기본 느낌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2시간 내 이어지는 똑같은 물 속 소리를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들려주느냐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음원이 가깝고 먼지 구분할 수 있는지부터 곰곰이 생각해봤다”는 그는 각종 잔향들을 고려해서 볼륨과 주파수에 변형을 주는 방법을 택했다. 어뢰, 미사일의 움직임도 마찬가지. 물 속에선 고주파음이 깎이는 점을 고려하고, 여기에 주변의 지형물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미세한 리듬감을 줬다. 최대 난관은 아직 남아 있었다. 잠수함이 하강시나 방향변경시 내는 기본 사운드를 건져내지 못했던 것.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그의 눈엔 작업실 한쪽에 처박혀 있던 쇠금고가 들어왔다. 영화 속 사운드는 세 사람이 붙들어도 겨우 움직일까말까한 쇠금고를 바닥에 몇 차례씩 끌려 얻어낸 “끄극” 하는 소리를 깎은 다음 물 속 잔향을 섞어 만들었다.

숨막히는 모험이나 다름없이 달려온 그에게 <텔미썸딩>은 안도감과 뿌듯함을 안겨준 영화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조절해냈다”는 점에서 그는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다. 이전까진 앰비언스, 폴리, 하드 이펙트 중 어느 한쪽에 치중한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을 하면서 그는 “사운드를 조율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득음(得音)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그는 “아직 멀었다”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이 그가 이전 단계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음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한 감독과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생긴 파트너십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그를 믿었던 감독은 작업하는 동안 “사운드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줬다”. 일례로 극중 딸의 시체부검 장면에서 가슴을 쩍 벌리는 장면(실제로는 양배추를 ‘쩍’ 갈라서 소스를 얻었다)의 경우, 사운드가 불러일으키는 상상만으로 송강호의 분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90년대 후반 들어서서 한국영화 사운드 역시 발전했다고 보지만, 그는 지금이 도약이냐 후퇴냐를 결정하는 시기라고 본다. 특히 여전한 관행은 그를 갑갑하게 만든다. 그가 굳이 극장에 나가 ‘파수꾼’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상영시 사운드 볼륨의 경우 국제규격에 따르지 않고 영사기사 마음대로 줄여놓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한번은 영사실로 쳐들어가서 싸우다 “왜 이리 시끄럽게 하느냐?”는 한 관객의 항의를 받고서 하는 수 없이 영사기사에게 돈을 찔러주고서 볼륨을 제발 높여달라고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믹싱할 때 그는 일부러 사운드를 국제규격보다 더 키워서 믹싱하는 편법을 쓰곤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사운드를 재현하는 멀티플렉스에선 소리가 너무 커서 “사운드가 찢어지는” 경우도 발생하니 그로서는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한다. “내 사운드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애초 알 수가 없으니 고치려야 고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불만이다.

미션! 할리우드 연수

영화음악과 사운드를 조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국내상황 역시 자신을 포함한 ‘사운드 공장장’들이 좀더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크게 보면 영화음악도 가상의 사운드 효과라고 볼 수 있는데 장면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여러 번 받는 것은 사운드 전체를 조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이어 지금 현재 작업하고 있는 <원더풀데이즈>의 경우, 음악감독인 원일과 상의해서 그가 전체 사운드 믹싱을 맡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표범소리가 필요할 경우에는 직접 운반해주는” 할리우드 시스템이 부러운 것도 사실. <YMCA야구단>의 경우에는 윤무부 교수로부터 학과 비슷한 조류의 소리를 받긴 했지만 “원하는 느낌이 살지 않아” 얼마 쓰지 못해서 아쉽다. “사운드는 만들어낸 순간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과 뒤섞이는 순간 완성된다”는 그가 앞으로 좀더 전문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는 스릴러와 음악영화. 12월엔 어떻게든 짬을 내서 팀원들과 함께 할리우드 연수를 계획하고 있는 그는 “1년에 2∼3작품만 맡아 연구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언제쯤 이뤄질지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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