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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의 세계영화제 방문기 [2]
2002-10-04

칸국제영화제(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5월15∼26일. 프랑스 칸. www.festival-cannes.org

사실, 칸영화제라는 우산 밑에서는 세개 또는 네개의 영화제가 동시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보아야 함. 우선 흔히 ‘경쟁부문’이라고 불리는 ‘공식상영’(official selection)이 있는데, 붉은 카펫 위의 스타들, 그리고 턱시도를 입은 기자와 관객으로 이루어지는 칸의 스펙터클은 여기에서 비롯됨. 여기까지가 지극히 귀족적이고 오만한 칸의 이미지를 대변함. 한편으로 이러한 스펙터클과는 무관하게 수수한 ‘주목할 만한 시선’이 공식 ‘비경쟁’ 부문으로 존재하고, 주최는 다르지만 칸영화제의 부문으로 공인받은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이 독자적으로 소박하게 운영되고 있음. 어쨌든 칸을 유별나게 만드는 것은 독특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이런 복잡한 구성과 함께, 영화제 동안 동시에 열리는 대규모 영화 견본시, 마켓의 존재임. 물가 비싸고, 표 구하기 어렵고, 혼잡하기 짝이 없음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묻는다면? ‘칸이니까’라는 말이 정답.

풍경: 공식 상영작의 티켓에 복장 규정이 찍혀 있는 영화제는 칸밖에 없는 듯함. 가장 까다로운 경우는 검은 양복, 흰 셔츠, 나비 넥타이를 갖추어야 하는데, 종이를 나비 넥타이 모양으로 오려 테이프로 붙여도 극장 입구에서의 복장 검사를 통과할 수 있다고 전해짐.

텔룰라이드영화제(Telluride Film Festival)

8월30일∼9월2일. 미국 콜로라도주 텔룰라이드. www.telluridefilmfestival.com

해발 2500m가 넘는 고원에 자리한 작은 리조트 타운이자 서부 개척 시대의 금광 도시 유적지가 텔룰라이드임. 영화제 개막 당일에야 상영작과 게스트 리스트를 발표하고, 미디어 홍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영화제(심지어 프레스 카드도 발급하지 않음. 영화제를 취재하려면 기자들도 패스를 사야 함). 그래도 예매와 동시에 패스가 매진됨은 매년 영화제를 찾는 ‘고급’ 관객의 존재 때문임.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외진 휴양지에서, ‘소수 정예’의 게스트들과 관객이 편안하게 어울리며 쉬어가는 분위기. 30편 미만으로 ‘엄선’된 상영작은 모두 미국 프리미어이고, 굵직굵직한 이름의 게스트들도 여기 와 있는 동안은 ‘동네 사람’처럼 보임. 칸이 파티 복장으로 치장한 유럽 귀족의 느낌이라면, 텔룰라이드는 캐주얼풍의 의상을 걸친 미국 부르주아 같다고나 할까?

풍경: 영화제 동안 텔룰라이드의 메인 스트리트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마주칠지도 모르는, 영화제의 단골 손님들-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 평론가 로저 에버트, 실험영화 작가 스탠 브랙키지,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알 파치노….

토론토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9월5∼14일. 캐나다 토론토. www.e.bell.ca/filmfest/2002

27년 전, ‘영화제들의 영화제’라는 슬로건으로 출발한, 지금은 북미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꼽히는 관객과 영화인을 위한 축제. 베를린에서 베니스까지 한해 동안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영화들을 모두 모아놓다시피 한 거대한 규모이면서, 시민을 중심으로 한 일반 관객과 게스트, 프레스 등 ‘전문가’ 관객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치밀한 배려가 돋보이는 영화제. 철저하게 비경쟁 원칙을 고수하면서, 경쟁과는 무관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문으로 분위기를 띄움. 한편으로는 외국영화의 미국 시장 진입 관문의 역할을 하는 탓에, 공식 마켓이 없어도 세일즈 회사와 배급사들의 미팅이 사방에서 이루어짐. 어쨌거나 일반 관객에게는 영화 많아 좋고 스타 구경해서 좋은 환상의 영화제.

풍경: 아마도 상영작 수와 부대 행사의 규모에서 세계 최대이지 않을까 싶은 영화제이지만, 이런 큰 영화제에서 느끼기 어려운 화기애애함과 편안함이 토론토의 큰 장점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함. 그 이유 중 하나는, ‘모범생’ 분위기로 똑 부러지게 일하면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의 몫으로 여겨짐(자그마치 1200명이나 되는!).

헬싱키국제영화제(Helsinki International Film Festival)

9월19∼29일. 핀란드 헬싱키. www.hiff.fi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나라, 핀란드에서 열리는 몇 안 되는 국제영화제 중 하나. 주류영화제도 아니고, 판타스틱영화제도 아니면서, ‘사랑과 무정부 상태’(Love and Anarchy)라는 영화제 부제에 맞게 매우 도발적인 프로그램을 특징으로 하고 있음. 북유럽 사람들의 특징인지, 온갖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스크린 앞에서도 꿋꿋하게(?) 무표정을 고수하는 관객이 인상적임. 핀란드의 영화시장이 워낙 작다보니 예술영화를 수입하는 회사도 하나밖에 없는데, 바로 그 회사가 영화제의 주최이기도 함. 몇명 안 되는 영화제 스탭은 거의 모두 카우리스마키와 자신이 ‘호형호제’하는 사이라 주장함.

풍경: 영화제에 온 게스트들에 대한 배려로, 하루 날 잡아서 ‘원조’ 핀란드 사우나를 체험하는 코스가 있음. 바닷가 숲 속에 자리잡은 ‘사우나 하우스’에 데려가는데, 하이라이트는 땀을 한바탕 뺀 뒤에 차가운 바닷물에 벌거벗은 채 그대로 뛰어드는 순간임. 무지막지한 현지인들은 한겨울엔 얼음을 깨고 들어간다는데…. 북극곰이 따로 없을 듯.

밴쿠버국제영화제(Vancouve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9월26일∼10월11일. 캐나다 밴쿠버. www.viff.org

캐나다의 서쪽 끝, 태평양 연안,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땅에서 열리는 영화제답게 동아시아영화를 메인 섹션으로 잡고 있는 영화제임. ‘용호상’(Dragons and Tigers Award)이라는 무협지스러운 이름의 상도 주는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초록물고기> 등이 수상한 바 있음. 차분하고 조용한, 영화를 보고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개폐막식도 특별한 부대 행사도 없는 학구적인(?) 영화제임. 다양한 영화들이 잘 추려져 있고 극장이 붐비는 일도 거의 없어 편안하게 영화보기를 즐길 수 있음. 워낙 밴쿠버의 자연 환경이 좋다보니, 영화제도 환경친화적, 관객친화적으로 흘러가는 느낌.

풍경: 아름답기로 소문난 밴쿠버의 풍경은 그 자체로도 큰 볼거리다. 외지에서 온 관객과 게스트에게는, 영화말고는 그것으로 여행의 보람을 찾고도 남을 만큼.

관련인물

김홍준/ 영화감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