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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의 모든 것(2)
2002-10-04

칸·선댄스·뉴욕 등 주요 영화제 캘린더 부터 영화제 뒷이야기까지

목적2 - 영화파세요, 영화사세요

영화제의 위세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작품 판매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가라는 점이다. 칸이나 베를린처럼 극장 옆에다 아예 본격적으로 시장을 벌여놓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A급 영화제의 상당수가 마켓 없이 작품의 질만으로 명성을 유지한다. 그렇다 해도 이들 영화제는 이탈리아의 미페드(MIFED), 미국의 AFM 등 영화제에 나도는 작품을 한데 모아 사고파는 전문 시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업가들은 자기 물건을 내놓고 사들이기에 가장 유리한 스케줄을 짜서 영화제와 시장을 연중 드나든다.

유명 영화제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경관이 훌륭하다는 것이다. 계곡이나 호수, 바닷가 혹은 문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도시 공간 등 내로라 하는 지리적 조건에다 일하기에 편리한 환경과 시스템을 덧붙이는 것이다. 영화란 어차피 현실과 꿈 사이에 놓여 있는 무엇일진대, 같은 일이라도 휴양지 분위기를 풍기는 곳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런 곳이라야 관객도 느긋하게 오랫동안 머물며 영화를 본다.

이같은 조건들을 빠짐없이 갖춘 곳이라면 아마도 칸영화제 정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제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구경하고 싶다면 칸을 첫 방문지로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매년 5월이 되면 예술가, 사업가, 외교적인 목적의 활동가, 기자, 평론가 등 수백명의 한국 영화인들이 그곳에서 인사를 나눈다는 소문이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열개나 스무개 안팎의 유명 영화제를 제외한 나머지의 크고 작은 영화제들은 무얼 하자는 것일까. 그 대답 역시 유명 영화제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바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는 대중영화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 그렇다고 매년 칸이나 베니스에 비행기 타고 갈 형편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힘닿는 대로 나라 안팎의 영화들을 불러모아놓고 즐기자는 것, 그것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백개 혹은 수천개 영화제들의 목표다.

그러므로 “이 작은 나라에 국제영화제가 도대체 몇개야?”라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부천과 전주, 광주의 시민들이 영화제라는 간판 아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혹은 여성이나 인권, 동성애 등 제각각 원하는 주제 아래 모여들어서 영화를 틀고 나름대로 즐기거나 목표를 이루면 되는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들의 조건과 욕구를 수용하기에 적당한 영화제 포맷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은 채 대형 영화제의 구성을 안이하게 흉내내려 할 때이다.

한국은 최근 몇년 사이에 국제영화계에서의 위치가 확연히 달라졌다. 변화의 조짐이 숫자상으로도 분명해진 것은 1999년으로 총 73개의 영화제에 80편의 영화가 출품되었다. 그 이후 매년 2배가량 늘어나기 시작해서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출품작 리스트 번호가 280번을 넘어서고 있다(장·단편 포함). 여기에 임권택, 이창동 감독이 칸과 베니스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국제영화제의 방파제를 계속 두들기던 한국영화의 물결이 드디어 둑을 넘어섰다는 확실한 신호탄이다.

목적 3 - 도전하라, 실험하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점검해보아야 할 것은 국제영화제와 국내 영화계가 맺게 되는 복잡한 관계들일 터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작가주의 감독과 비상업적인 영화들, 그리고 협애하기 짝이 없는 예술영화 시장을 유럽 등지에 연결함으로써 이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영화는 대중영화가 시도하기 어려운 형식과 내용에 도전함으로써 한국영화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는 상업영화의 저변을 실험하는 효과도 갖는다.

다만 최근 영화제 출품과 수상이 빈번해지면서 이른바 영화제 효과라는 것은 그 의미가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예술영화 관객을 지속적으로 묶어낼 수 있는 대안적인 배급망을 수립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 효과의 부정적인 측면도 감지된다. 일부 감독들 혹은 작품들의 경우 아예 유럽영화제를 의식하고 만들었거나 유럽적인 취향과 미의식(그런 게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 투항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작품에 대해서는 유럽의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나뉘는데 일부에서는 환영하면서 상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서 ‘유럽 스타일을 너무 흉내냈다’고 평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의 상업영화와 대중 관객에 대한 손쉬운 포기와 연관되어 있는데, 그럴 때면 유럽의 영화제가 고급예술 혹은 작가주의라는 기치 아래 할리우드와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미의식을 식민화하는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은 어떤 정체성과 목적을 의식하면서 이런 맥락에 합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따라나온다.

일견 예술가들의 화려한 잔치처럼 보이는 국제영화제란 실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그물망이 촘촘히 얽혀 있는 복잡한 존재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된다. 좀더 유능하고 생각이 많고 다양한 방식으로 잘 훈련된 인력이 국제영화제 전문가로 자라나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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