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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의 모든 것(1)
2002-10-04

칸·선댄스·뉴욕 등 주요 영화제 캘린더 부터 영화제 뒷이야기까지

다음과 같은 분들은 아마도 이 글을 건너뛰실 거라고 예상합니다.

1. 영화는 방에서만 본다. 텔레비전 채널 이리저리 돌려가며 재미난 장면만 편집해 봐도 줄거리는 다 파악된다. 비디오 자주 빌리고, 때에 따라 비디오방에도 간다.

2. 멀티플렉스 로비에서 팝콘 한 봉지 들고 서 있으면 숨이 멎을 것만 같다. 형광색 인테리어, 게임기의 우당탕 소리와 댄스음악의 황홀한 조화. 아,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3. 이 세상에 스티븐 스필버그보다 더 훌륭한 감독은 없다고 본다. 조지 루카스도 스필버그만큼 훌륭한가, 이것이 나의 유일한 고민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분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의견 있으시면 제 이름 옆에 붙은 주소로 보내주십시오.

1.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 안 나지만 영화는 필름으로 봐야 제 맛이라는 느낌은 남아 있다. 더빙을 하거나 양옆으로 잘린 화면을 보면 열받기 때문에 주말의 명화도 보기 싫다.

2.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가면 꼭 나 혼자 튄다. 지루해 보이는 영화쪽으로 기웃거려서 성격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3. 어디론가 탈출하는 꿈을 매일 꾼다. 낯선 곳으로 가서 하루에 영화 네편씩 보며 며칠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4. 영화제에 관한 보도가 나오면 대극장 앞의 붉은 주단을 확 뒤집어보고 싶다. ‘저건 쇼야’ 하는 직관이 발동한다.

5. ‘무슨무슨 영화제 초청’ 이런 거 대문짝만하게 써붙인 광고 보면 거부감이 든다. 유럽 한 바퀴 돌고 와서 잘난 척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재미있고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6. 칸이나 베니스영화제말고 ‘곤충공포영화제’ 뭐 이런 거 없나 공상한다(그런 거 물론 있다. 8월에 미국 일리노이의 한 대학 캠퍼스에 가면 곤충요리 먹으면서 희한한 영화 볼 수 있다).

7. 국제영화제의 미학적, 산업적, 정치적 효과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상관성에 대해 관심있다(당신은 영화진흥위원회에 취직하거나 <씨네21> 기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

목적1 - 할리우드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와 같은 구분에 깔려 있는 다소 오만한 기색은 국제영화제의 기능 자체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 국제영화제의 목적을 한마디로 정의해보자면, ‘할리우드 틈새에서 살아남기’라고 말하겠다.

100년이 넘는 영화역사 동안 지역별, 시기별로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지구상의 영화시장은 대부분 할리우드 차지다. 우리나라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6년의 한 신문이 “미국영화가 8, 9할, 유럽영화가 나머지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고 분개한 이래 오늘날까지 미국영화의 우세가 뒤집힌 적은 없다.

할리우드를 위해 일하는 재수 좋은 소수에 속하지 않는 전세계 영화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할리우드영화 스타일과 산업구조를 열심히 따라잡아 자국 시장에서 흥행작 내놓기, 아니면 작고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낸 다음 비슷한 사람끼리 1년에 한번씩 모여 잔치하고 띄워준 다음 서로 팔아주기.

국제영화제가 후자의 방침에 구미가 당기는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할리우드영화가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뛰어난 이야기 구성, 그리고 지구촌 스크린을 한꺼번에 뒤덮을 수 있는 배급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중적 친화력이 강한 할리우드영화와 차별화하려면 정치적으로 교양 쌓기, 미학적으로 세련되어지기, 기술적으로 소박하거나 실험적으로 되기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또한 각국에 존재하는 예술영화 시장을 한데 모으면 할리우드영화를 피해 제법 움직여볼 만한 여력이 된다. 유럽이라고 해도 개별 국가의 예술영화 시장은 매우 협소하다. 그러나 유럽과 미주, 아시아 등지의 주요 국가에 흩어져 존재하는 예술영화 관객을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다면 하나의 대안적인 배급망이 가동될 수 있다. 국제영화제는 바로 그 시장을 연결하는 하나의 박람회 구실을 한다. 한국영화가 외국에 수출되는 판로 역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들 아트영화 시장용인데, 국내에서 흥행하는 작품과 해외에서 팔리는 작품이 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예술영화라고 인정하는 작품과 해외에서 팔리는 작품 사이에도 다소 불일치가 있다.

교양과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예술영화 시장에 관한 한 유럽을 따라갈 대륙은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375개가량의 영화제(<The Film Festival Guide> ―Adam Langer, 2000년―의 참가신청서 제출 정보 기준) 가운데 압도적인 다수가 유럽에 몰려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위권 영화제는 물론이고 카를로비 바리, 산 세바스찬, 로테르담, 로카르노 등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유수의 영화제들도 태반이 유럽에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곳은 역시 북미 대륙으로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몬트리올, 시애틀 등이 인구에 회자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호주 등 나머지 대륙의 경우 세상은 넓으나 할 일은 많지 않다. 한국에는 총 24개의 영화제가 있고(영화진흥위원회 웹사이트 수록 정보 기준) 그중 상당수가 국제영화제이므로 땅 넓이에 비해서는 많은 편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명성을 얻는 영화제들은 예외없이 영화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다.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목할 만한 작가주의 영화 혹은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는 젊은 영화들을 부지런히 챙기고 골라서 푸짐하게 내놓는 것이 이들의 첫 번째 특징이다. 역량이 입증된 감독들의 작품 스무편 안팎을 골라 경쟁부문에 묶어서 흥미를 북돋우고, 나머지는 이런저런 이름의 부대 섹션에 모아둔다. 우리나라 저널들은 해외영화제를 다룰 때 경쟁부문 작품을 리뷰하고 수상 결과를 뉴스로 전하는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경쟁부문은 국가별 안배, 지명도 등 영화 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미덥지 못한 선정과 수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관습적인 냄새를 풍기는 영화도 많아서 보는 재미가 덜하다. 특히 카메라의 시선을 모으기에 유리한 스타를 불러들이자면 경쟁부문 티켓을 가지고 쇼 비즈니스계와 타협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극장에 내걸리는 영화를 보면 그 이면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거나 영화제쪽에서 이런 일을 연중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짜임새 있고 훈련된 눈을 가진 일련의 조직이 가동되어야 한다. 그 정점에 집행위원장과 소수의 프로그래머가 있고, 이들은 각국의 영화계와 사적이고 외교적인 네트워크를 맺어 수시로 정보를 취득한다. 정보의 상당부분은 남의 나라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얻어진다. 거물급 인사들은 파티와 극장, 길거리를 낚시질의 장소로 요령껏 소화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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