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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독립영화 <뽀삐> 제작일지(6)
2002-10-05

짖어라 강아지!찍어라 카메라?

2002년 6월

두달만 쓰기로 한 백호림의 사무실을 우리 팀이 점거한 지 거의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사무실에서 편집이 거의 끝나갈 즈음, 편집을 하는 김수진이 대뜸 얘기한다. “이 장면에서 새가 날아다니는 컷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독은 바로 연출부한테 새를 찍어오라고 시킨다. 비둘기라도 괜찮다고 한다. 연출부들은 하루 온종일을 남산에서 지내며 30초 분량을 찍어왔다. 이런 즉흥성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디지털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이 고생을 많이 하다보면 비뚤어지게 마련인 즉, 너무도 성격이 비뚤어진 나는 이제 이런 현상 모두 ‘기동성’이라 명하는 디지털영화의 장점으로 보이질 않고, 디지털영화의 특성을 악용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김지현의 카메라를 팔아 후반작업비를 마련하고 있던 중에 영화진흥위원회의 ‘디지털 장편영화 배급지원작’에 <죽어도 좋아>와 함께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영진위 사이트를 뒤지며 또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이 남았는가를 확인하곤 한다.

디지털영화는 영화인력보다는 오히려 방송인력과 함께하는 것이 현명하다. 현시기는 방송인력이 디지털 메커니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7월

촬영이 다 끝난 뒤 뽀삐가 농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안 좋아진다. 김지현은 뽀삐의 일생 중 나름대로 즐거웠을 거라고 말한다. 훈련사를 통해 농장 주인에게 뽀삐의 구입의사를 밝혔지만, 농장주인은 보름만 쓰겠다고 했으면서 두달간이나 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하며 거절했다. 뽀삐에게 본인이 원치 않는 ‘종견의 삶’보다 ‘애견의 삶’을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뽀삐는 애견의 삶에 간택되었다.

부천국제영화제의 라인업에 막차를 타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는 첫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영화제 기간 중 블록버스터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영화음악가 이동준을 만났다. 배우 오윤홍이 그에게 <뽀삐>의 음악을 부탁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안 해도 괜찮다”를 연발하면서도 안 해주면 젊은 영화인이 아닌 것처럼 그를 대했다. 결국 이동준이 합세하기로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감이란 굴레를 짊어지고, 이렇듯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독립영화를 직접 하는 것과 간접적으로 돕는 것을 선택하라면? 나는….

2002년 9월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제 막 개봉이란 절차를 앞두고 있다. 개봉을 한다 해도 1만명 이상은 이 영화를 보아야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가 1만명 들면 거의 대박이다. 그러나… 나는 점점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냉정해진다. 현재까지로서는 김지현의 카메라를 다시 살 수 있는 기미는 안 보이고, 내 신용카드는 계속 연체 중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빚 안 지고 독립영화 만들기’란 없다!이진숙/ <뽀삐>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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