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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독립영화 <뽀삐> 제작일지(5)
2002-10-05

짖어라 강아지!찍어라 카메라?

2002년 5월 초

재촬영 전날, 충무로의 미용학원에서 뽀삐의 미용을 하기로 했다. 영화에 출연할 강아지라 하니까, 미용사 3명이 달라붙어 목욕시키고, 드라이하고, 커팅을 한다. 그들에게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영화작업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즐거워 보였다.

미용이 끝나도 감독은 못내 석연찮은 표정이다. 몇 시간 뒤 말문을 연다. “이 개가 아닌 것 같아….” 한달간을 강아지 구하느라 경기도 전역을 뒤지다시피 해 겨우 찾아냈는데, 나이 어린 스탭들에게 굽실거리며, 나이 많은 배우들에게 사정사정해가면서 재촬영을 설득해가며 겨우 촬영일정을 다 맞추어놨는데…. 그 촬영이 바로 내일 아침 8시부터인데, 또 다시 이 강아지가 아닌 것 같다니….

‘이 영화 엎자. 돈도 없이, 말도 안 통하는 개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 것이 시작부터 잘못이었다….’ 그동안 노력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말도 안 통하는 강아지들을 데리고 지내온 지난 1년을 돌이켜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새벽 5시쯤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촬영 진행하자”는 것이다. 뽀삐는 특유의 강인한 체력과 포토제닉한 용모로 순탄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훈련사 없이 뽀삐가 출연하는 장면들은 거의 찍어간다. 이제 훈련된 연기를 촬영하는 것만 남았다. 새벽 2시. 포천에서 오고 있는 조련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는 중에 빗길에 차가 중앙선을 넘어 차의 반이 날아갔다는 것이다. 목숨은 건졌단다. 오! 하나님! 이 영화는 개에 관한 한 신의 저주 수준이다. 뽀삐 연기가 필요한 장면들만 남겨놓고 다 끝냈는데, 훈련사가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실, 훈련사가 있다 해도 단기간의 훈련으로 우리가 원하는 장면을 찍기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개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오히려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indi spirit’ 즉, ‘독립영화정신’이란 ‘무모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예기치 않은 데서 발생했다. 주인공 백현진과 뽀삐의 산책신을 촬영해야 하는데, 산책하는 뽀삐가 전혀 오줌을 누지 않는 것이다. 평생을 농장의 케이지 안에만 갇혀 있는 강아지라 산책이란 걸 안 해본 것이다. 거세시키지 않은 수컷이라면 무조건 전봇대를 킁킁거리며, 영역표시를 할 줄 알았는데, 뽀삐는 케이지 바깥에서 단 한번도 오줌을 눠보질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날 촬영을 접고,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대책이란 게 별거 있나? 또다시 촬영을 중단하고 길거리에서 오줌 누는 훈련을 시킬 수밖에…. 뽀삐를 매일매일 촬영할 장소에 데리고 가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오줌 누는 훈련을 시켰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열흘이 지나자 뽀삐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막상 촬영 당일이 되자, 뽀삐는 또 오줌을 누질 않았다. 당황한 훈련사는 페트병에 본인의 오줌을 받아 전봇대에 뿌렸다. 단 한번에 오케이 날 리가 없지…. 당황해하는 연출부들을 설득했다. “나는 신체구조상으로 페트병에 오줌을 담을 수 없다.” 결국 연출부들이 돌아가며 페트병에 오줌을 받아 전봇대에 뿌렸다. 결국 뽀삐의 본능적인 연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개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김지현과 나’ 이렇게 세트로 무모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시도 못할 일이었다.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스탭들은 짜증을 넘어 포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처방책은 스탭을 최대한 간소화시키는 것이었다. 감독, 나, 연출부, 그리고 뽀삐가 매일매일 촬영장소인 기자촌으로 향했다.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연출부가 뽀삐의 퇴로를 막고, 내가 뽀삐를 유인하여 동네를 쏠쏠거리며 다니고, 이집 저집을 드나들며 암캐들을 건드리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기자촌이란 동네는 매우 매력적인 동네이다. 20여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으며, 집집마다 서너 마리의 발발이들을 동네에 풀어놓고 키운다. 집안에서 화초처럼 자라는 애완견보다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며 다니는 발발이들이 너무 예뻐 보인다.

독립영화를 한다고 해서 잠깐 시간 내서 돕는다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착각이다. 진짜 일처럼 각오하지 않으면 오히려 일을 방해하는 수준으로까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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