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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독립영화 <뽀삐> 제작일지(4)
2002-10-05

짖어라 강아지!찍어라 카메라?

2002년 4월 초

봄 촬영 3회분만 남고 모든 촬영이 끝났다. 촬영이 개시되려면 한달 정도 남았는데, 편집을 하던 감독이 회의를 소집했다. 제목이 ‘뽀삐’인 만큼, 이 영화에서의 강아지의 역할은 중요한데… 여태껏 촬영한 것으로는 강아지 ‘쁘띠’가 너무 작아 존재감이 없고, 뽀삐의 자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뽀삐의 자아?

곧이어 강아지 캐스팅을 다시 하자는 폭탄선언을 한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제작비는 후반작업 비용만 남기고 거의 다 썼는데, 뽀삐가 등장하는 70%를 다시 촬영한다니! 극도의 패닉 상태가 되었다. 나에게 이런 본성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흥분했다.

그러나 별수없었다. 내가 봐도 모니터 속 강아지가 뽀삐의 캐릭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캐스팅을 한다고 해서 말도 안 통하는 강아지에게서 원하는 연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김지현은 ‘연기하는 강아지가 있다’고 계속 주장한다. 어디서 봤냐고 물으니, 그 대답이 가관이다. “잭 니콜슨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연기가 가능한 강아지를 구하는 일도 일이지만, 여태껏 쓴 만큼의 제작비를 구해야 하는 태산 같은 임무가 주어졌다.

감독들은 지독한 에고이스트다. 독립영화 감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2002년 4월 중순

의정부, 포천, 동두천… 나는 계속 주연 강아지 뽀삐를 찾아다니고 있다. 여주에 있는 ‘신비로 애견훈련학교’의 훈련사가 직접 키우는 말티즈 ‘람세스’는 기본기가 되어 있는 개였다. ‘훈련사가 기르는 강아지!’ 그토록 우리가 갈망해왔던 이 얼마나 이상적인 캐스팅인가?

재촬영 들어가기 3일 전, 모든 준비는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 훈련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훈련받던 중에 람세스가 대형견에게 물려 병원에서 수술 중이라 한다. 연기는커녕 못 걸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다시 한번 절망이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렇지, 이렇게 순탄하게 잘 풀릴 일이 없지….”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위는 ‘부탁’이다. 영화가 길어지면서 ‘부탁’을 하게 되는 범위는 점점 넓어진다. ‘부탁’이란 몹쓸 행위는 ‘관계의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2002년 4월 말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지만, 일할 때 가장 쉽게 적용하는 ‘격언’(?)이다. 모든 과거를 잊고, 새로운 훈련사를 섭외했다. 새로운 훈련사가 구한 강아지를 보러 포천에 가보니, 순종 말티즈는 아니고 애완견이라기보다는 야생성이 강한, 그러나 건강미만큼은 넘쳐 보이는 강아지였다. 포천의 한 농장에서 살고 있는 유능한 ‘종견’이라고 한다. 이름도 없이 살아온 산전수전 겪은 강아지로 곧바로 ‘뽀삐’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촬영일자는 다가오고, 훈련기간은 하루라도 있어야겠기에 결정을 머뭇거리는 감독에게 수선을 떨며 ‘이 강아지 정도면 우리가 알아본 중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며 에둘러 결정을 하고, 훈련에 착수하도록 지시했다. 지인 박명천 감독이 제작비의 부족한 부분을 투자하기로 했다. 은행대출을 받는 것보다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독립영화 <뽀삐>의 생존력은 성공할 수도 있는, 혹은 성공할지도 모를 그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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