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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혼동하는 드라마 <야인시대>
2002-10-05

부끄러운 주먹에 바치는 위인전

<야인시대> SBS 월·화 밤 9시55분

<야인시대>는 종로의 주먹 김두한의 일생을 그린다. 100부작으로 그려지는 대하극에 걸맞게 스케일도 크거니와 격동기의 삶이 결합되어 사건도 굵직하다. 또한 등장인물도 많아 한회도 빠지지 않고 보아야 하는 중독성을 자극하는 이 드라마의 인기가 저자에 대단하다고 한다. 주간 시청률 32%(TNS미디어 조사)로 MBC 일일연속극 <인어 아가씨>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역시 김두한을 다룬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도 1990년 개봉 당시 67만명이라는 관객(서울)을 동원하며 최다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는데, 그 사이 영화의 초전성기를 거치긴 했지만 이 기록이 우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 인기에 힘입어 임권택 감독은 <장군의 아들>을 2, 3까지 만들어 관객의 기대에 적극 부응하였다 한다. 김두한은 풍운아들의 시대를 그린다면 빠지지 않아야 할 인물. <왕초>에도 김춘삼과 맞장을 뜨는 인물로 출연하기도 하였고 <야인시대>의 작가이기도 한 이환경 작가의 <무풍지대>에도 김두한이 등장하였다.

오야붕, 영웅이 되다

김두한이라, 역사적 인물 중 드라마적으로 치자면 ‘오야붕’이라 할 만하다. 그 이유를 필요없게나마 갈음하자면 무협의 본국 중국이나 사무라이의 칼부림으로 장광이 펼쳐질 일본이 아니라, 한국 토종으로 ‘주먹’의 기개를 떨치며, 그 울분의 시대로 말미암아 김두한 그 자체로 배경에 삼각편대가 곧게 펼쳐지며, 그의 발차기가 또한 예술이라 이르니 어느 각도로 잡으나 스펙터클한 풍광이 펼쳐진다. 그에 더해 김두한이 누구더냐, 그 앞에 붙는 ‘장군의 아들’ 칭호는 워낙 대단한 것이 아니더냐. 그 장군은 일제하 봉오동전투와 함께 2대 대첩으로 일컬어지는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만주군 군사총사령관이기도 한 김좌진 장군인 것이다. 김두한을 얻은 사연 또한 기구하니 장군이 일본군의 눈을 피해 경성의 기생집에 숨어 지내는 동안 그 딸과 눈이 맞아 얻은 아들이다.

아아, 그러나 일갈하노니 부끄러운 역사 속에 김두한 또한 부끄러웠다. 그는 주먹으로 일세를 풍미한 일개 ‘인간’이었을 뿐이니 난세를 표표히 뚫고간 ‘영웅’이 되기에는 부끄러웠다. 국회에서 정부를 피고로 부르며 똥통의 똥을 뿌려 그 죄를 응징하는 그 손은 그 전에 이미 부끄러웠다.

누가 김또깡(김두한을 일본인 형사가 이렇게 부른다)은 아무하고나 맞짱을 떠도 이긴다는 말을 하니 다른 이가 받아 “사실은 시라소니가 더 주먹이 쎄”라고 아는 체를 한다면, 이 논쟁은 치열하고도 올바르다. 김두한은 주먹이니깐. 그러나 <야인시대>가 김두한이 ‘영웅’이었다고 우길 때 듣는 사람은 입 벌어진 채 침 흘린다. 거룩하도다. 그가 주먹으로만 남을 때는. 그러나 어쩔꺼나, 드라마 <야인시대>는 비참한 시대를 살다간 김두한이 영웅이었다고 말한다. 거침없이 요약하자면, 거지패와 어울리고 주먹으로 종로를 평정했는데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저력을 발휘했으니 어디 그런 사람이 흔한가고, 그러니 영웅이었다고 말한다면 한국의 격변기를 단순화한 소리고, 일제를 증오하고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주먹 세계를 지키려 했고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빨갱이를 몰아내려고 노력한 민족주의자라고 했다면 주먹계를 미화한 소리다.

조선일보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프로젝트에나 버금가는 이 ‘2002 주먹, 영웅이 되다’가 가진 중압감은 그 어깨가 떡 벌어졌고 뼈대가 굵다고는 하나 감당하기에는 힘들 것이니, 그 무게의 짜릿함이 흘러 허리 디스크로 도질 정도일 것이니.

이런 중압감은 자 아니면 타, 우리편 아니면 적만 있는 이 드라마의 대칭구조에서라면 필연이다. ‘민족주의자/ 변절자, 일본인’의 확연한 대립구조로 말미암아 어중간히 서 있는 것은 어린아이가 태풍 루사 속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만큼 어렵다. 인간적인 갈등이란 전혀 없다. 편하다. 완벽하다. 미국이 쌍둥이빌딩을 저격받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배후로 지목할 때 전쟁이 날 것 같이 혼돈에 빠졌을 때 아이들이 질문한다. “어느 쪽이 우리 편이야?” 그런 단순명쾌한 세계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가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명쾌한 선악구조로 쓴 위인전

<야인시대>는 초등학교 위인전에서나 등장할 만한 대칭구조를 보여준다. 위인전은 완성도를 높혀가는데 민족주의자들이 읊는 건 닭살 대사다. 그대로 옮겨 ‘김두한 위인전’이다. 감옥에 든 김두한을 찾아가 할머니가 “이 땅에 태어나 생각있는 사람은 감옥에는 수시로 들어올 수 있다” 하고 기자는 검열이 걸릴 게 확실한 기사를 쓰면서 “그래도 총독부 검열관은 읽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자신들이 얼마나 우매한 정책을 강요하고 있는지 깨닫고 하려고 말입니다”라고 하면, 듣는 국장은 업무 시간에 과실 없을 농사 짓는 휘하의 기자에게 “허허허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쳤단 말인가? 허 그렇다면 이거 또 내가 불려가 곤욕깨나 치르겠구만 그래”라고 장단을 맞춰준다. 일본인들마저도 이에 질세라 위인전 대사를 읊으니 “조선 사람들의 특징은 보기보다 매우 끈질기고 억척스럽다는 것이야. 그리고 한번 당한 건 잘 잊지를 않는다”며 한국인의 끈기를 높이 산다.

대표 영웅 김두한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었다. 장군의 아들이었으므로. 김두한은 거리의 건달이 된다. 그러나 김두한이 건달이 된 사연이 영웅의 면모를 변치 않는 방향으로 꾸려진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는 영웅이다. 그 사연인 즉.

김두한은 쌍칼의 “우리(건달)는 거리의 독립군”이라는 말을 듣고 만주행을 포기한다. 그곳에 가나 이곳에 있으나 독립군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 이 말에 반감도 있었지만 그의 이런 뻣뻣함을 마사지하는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쌍칼의 ‘보호’구역 시찰에 따라나섰을 때, 할아범이 정답게 달려나와 “한잔 해” 하는 것을 보고, 쌍칼이 오늘은 시간이 없다 하니 사랑 못 받는 첩의 앙탈과도 비슷하게 “다음에는 꼭 와야 돼”라고 앞서서 머리 조아리는 것을 보고, 이 조직이 민중의 신망을 두텁게 얻었구나, 독립군이 맞구나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되고나니 한갓지도다, 독립군 하는 일이. 양복 쫙 빼 입고 패거리와 거리를 걷다가 김두한은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는데 무옥은 대답한다. “뭐 별다른 건 없고 이곳저곳 우리가 뒤를 봐주는 가게를 둘러보면 되는 것이여. 그리고 뭐 당구도 치고 다방에 가서 샥시들 궁둥이도 두들겨주고 밤 되면 술도 마시고 뭐 그런거여.”

표적을 향해 쌍칼이 칼을 던지듯 질문 하나 던져보자. 그 애국한다는 짓거리로 일본 야쿠자(이 또한 드라마의 영웅 스토리에 걸맞게 사무라이로 변모했다)와 벌이는 종로의 세력 다툼은 나라가 일본에게 몽땅 넘어간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관대? 포목점 앞이 ‘독립군’의 세력이고 그 옆 참기름집이 하야시 땅이라고 무슨 애닮음이 있관대? 차라리 독립군도 없이 건달도 없이 지들끼리 장사하는 게 일본 땅 아래라도 낫지 않갔네.

박정희가 성군이고 김두한은 영웅이고

갈지자 걸음을 걸어 <야인시대>가 논란이 됐었던 때로 들어가보자(굳이 말하자면, 앞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언급한 뜻은 따로 있음이로다). 8월 19일 7회 방영분은 논란에 휩싸였으니 동아일보 창립자 김성수가 어린 김두한의 가난을 보살펴 주는 장면에서 등장한 내레이션이 문제였다. “인촌 김성수, 암울한 일제 통치기를 민족의 계몽운동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 교육과 언론, 그리고 민족자본가로서 그 시대 지성의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이다.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이후, 동아일보사를 창립하였으며 중앙학원과 지금의 고려대학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웠고 경성방직과 호남에서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민족의 의지를 일깨우는데 헌신해 온 선각자이다”라고 굵은 목소리로 읊어주니 한번에 요약해주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김성수는 지난 2월28일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발표한 16명의 ‘집중 심의대상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국회의원 모임’에서는 광복회에서 넘겨받은 692명의 명단과 함께 이 명단을 발표하였는데 이 둘의 차이는 이렇게 설명된다. “직업적 친일분자의 친일행위와 권력에 굴복한 지식인 또는 저항과 협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 운동가의 친일행위는 분명 다를 것이다. 후자의 사람들은 한국사회 각 영역에서 지식과 문화를 생산 보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자들이다. 영향력이 큰 만큼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 또한 크다. 그런 면에서 (16명의) 친일 행위는 다른 692명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사실 16명을 뺀 친일파 명단이란 면죄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김민철, <역사비평>, 2002년 여름)

몸과 마음이 1930년대 말에 있는 것인 양 앞날이 걱정스럽다. 20년대 말에 김성수 내레이션이 등장했으니 격변기 지식인들이 변절을 하는 30년대 말, 40년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혼돈의 초절정기 해방 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승만의 휘하로 들어가 김두한이 공산주의자를 무자비하게 살상하는(누구는 200여명이라고 하는) ‘청산리대첩’ 같은 혁혁한 공을 올리는 혼란기로 가면 어떡할 것인가. 한번 영웅을, 이승만이 김두한을 그랬듯 쉬 내칠 수는 없잖은가. 작가 이환경씨는 “광종과 마찬가지로 박정희도 폭군이었지만 경제발전 이룬 점에서 성군이라 할 수 있죠.”(<뉴스메이커>(465호, 2002년 3월21일치 인터뷰)라고 했으니 60년대는 어떤 성군의 얼굴로 비칠 것이가. 김두한은 영웅이고 잘못은 모두 시대가 저지를 것인가. 영웅 김두한은 홀로 옳은 채 시대를 향해 똥통을 날릴 것인가. 구둘래 kudle@hiho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