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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죽이느냐,그것이 문제로다 <뱀파이어 가장무도회>
2002-10-05

컴퓨터 게임

뱀파이어는 카인의 자손이라고 불린다. 흡혈로 생명을 유지하며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는 저주받은 존재다. 하지만 이건 옛날 얘기인 것 같다. 밝고 건강하고 명랑한 것보다는 어둡고 냉소적이고 고독한 게 더 쿨하고 패셔너블한 세상 아닌가. 뱀파이어는 한손으로 사람을 던져버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박쥐로 변신해 하늘을 나는 그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창백한 얼굴과 무심한 시선으로 홀리지 못할 사람은 없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마디에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을 기꺼이 저버린다. 뱀파이어는 섹시하다. 흡혈은 공포나 혐오보다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자본가를 흡혈귀라며 욕하던 마르크스가 무덤 속에서 어리둥절할 것이다.

뱀파이어가 섹시한 건 너무 아름답고 카리스마가 넘쳐서가 아니다. 그들은 무한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피를 마셔도 피에 대한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그들은 영원히 욕망한다. 가슴에 말뚝이라도 박히지 않는 한 그들의 욕망을 종결지을 방법은 없다.

<뱀파이어 가장무도회>의 세계에서 뱀파이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와 더불어 살아온 존재들이다. 역사가 거듭되면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윤리를 구축했고 이에 따라 여러 종족으로 분화했다. 육체와 정신의 완성을 추구하는 브루하 종족이 있는가 하면, 죽음의 원리를 파헤치고 싶어하는 카파도키안 종족이 있다. 각각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계율과 규칙들을 만들고 지켜왔다.

이들은 가면을 쓰고 인간들 사이에 끼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가장무도회를 벌인다. 가면이 벗겨지는 것은 그들의 힘의 원천인 동시에 저주받은 천형인 피를 욕망하는 순간뿐이다. 그들은 피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카인이라는 ‘인간’의 후예이기에 피를 빨더라도 상대를 죽여서는 안 된다. ‘가축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이 너무 목마르면 본능이 의지를 잠재운다. 일단 선을 넘으면 피에 미친 존재가 되어 보이는 대로 잡아서 피를 빨고 또 빤다. 이제 ‘적당히’ 빨 수는 없다.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상대를 해치지 않는 지점에서 멈출 수가 없다.

여기에 더해지는 게 게이머의 욕망이다. 뱀파이어가 마법이나 다른 특수 기술을 쓰려면 피가 필요하다. ‘괴력’이나 ‘신속’처럼 공격 보조계 마법은 물론이고, 체력을 회복시키는 ‘피의 치유’조차도 피 없이는 쓸 수 없다. 그런데 필요할 때면 당장 피를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말 요긴할 때 주위에 아무도 없을 수 있고, 있더라도 순순히 흡혈에 동의하지 않아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우격다짐을 벌여야 하는 일도 생긴다. 필요할 때는 물론 당장은 필요하지 않더라도 앞으로를 대비해 미리 피를 확보해놓아야 게임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이제 적당한 선이 어딘지로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닥치는 대로 피를 빨고 또 빨아야 한다. 뱀파이어들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뿌리깊은 인간의 흔적을 스스로 포기한다.

뱀파이어의 딜레마는 추상적 수준의 윤리론적 문제다. 욕망에 지나치게 충실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성립된 사회적 규범이 무너진다. 반면 게이머의 딜레마는 거칠게 코앞에 들이밀어지는 성난 윤리론적 문제다. 끝까지 인간성을 지키려다가는 생존이 위협받는다. 피가 모자라 죽어버린다면 애써 지킨 인간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묻는다. 당신 자신은 생존이라는 욕망 앞에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릴 수 있을까?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