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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등급위원회, 이것이 문제다 [1]
2002-10-07

<죽어도 좋아> 사태로 본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문제점과 개선책

“죄인 취급하지 마라. 심의절차는 공정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등급위) 김수용 위원장의 항변이다.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가’ 등급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등급위 규정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제한상영관이 없어서 상영되지 못했는데 “왜 등급위 탓으로 돌리냐”고 되묻는다. 등급위가 9월23일 발표한 ‘<죽어도 좋아> 사태에 관한 위원회의 입장’도 결국 “이번 일을 계기로 제한상영관 설치에 관한 현실적 논의가 활성화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문화관련 단체들은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영화인회의,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등은 오히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등급위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월25일, 영상물등급위원회 소위원회 위원이었던 이원재, 김재용씨는 추가 사퇴 성명서에서 “<죽어도 좋아> 제한상영 결정으로 촉발된 지금의 사태는 결코 개별 영화의 등급분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오래된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한다”라고 말했다. 등급위 ‘진단’하는 일에 팔뚝 걷어붙이고서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처방’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로부터 등급위의 문제점과 개선책에 대해 들었다.1. 첫 단추부터 잘 꿰야 하는 법등급위 운영 규정에 따르면, 등급위원은 대한민국예술원회장(이하 예술원장)의 추천에 의해서 대통령이 위촉한다. 예술원장은 이에 앞서 청소년보호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대한변호사협회, 방송위원회와 기타 비영리민간법인 등의 단체에 2인 이내의 추천대상자를 요청한다. 얼핏 보면, 다양한 의견들을 갖고 있을 단체들을 아우를 수 있는 구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영화인은 “현재 등급위 구성방식은 ‘최악’”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왜일까. 위원추천권을 갖는 단체 또는 기구를 정하는 데 있어 합의과정이 전혀 없다는 게 첫 번째 문제. 등급위원을 추천하는 단체를 선정하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으니 구색을 맞추고자 모든 단체들을 총집합시키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비판이다. 바꿔 이야기하면, 맘에 들지 않으면 추천단체를 쉽게 바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등급위가 출범한 9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구조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각계에서 추천받은 인사들을 예술원이 점찍지만, 여기서도 추천 인물에 대한 검증 절차는 쏙 빠져 있다. 복수로 추천하면 이중 1인을 위촉하는 절차만이 이뤄진다. 한때 등급위에서 활동한 바 있는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인선 절차가 비밀리에 이뤄지는데다 애초 검증이고 뭐고 불가능한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위원회가 구성된 이후에는 문제가 발생해도 정작 불만을 터뜨릴 곳이 없으니 자리잡은 위원들은 ‘버티면, 그만’이다. 개선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위원 위촉시 권한을 행사할 단체 또는 기구를 뚜렷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를테면 영화의 경우, 영진위가 2∼4인의 영화 및 비디오 담당 위원, 그리고 해당 소위 위원까지 추천하는 방식이다.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어라!2. 어디서 감히 ‘여론’을 들먹여?‘독선’은 등급위가 앓고 있는 만성질병 중 하나다. 여론에 귀기울이기보다 확고한(?) 의견을 개진하고 밀어붙이는 데 능숙하다. 등급위의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가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 등급 결정을 내린 이후 수차례 토론회가 열렸지만, 그 자리에 얼굴을 내민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시 재심을 앞두고 시사회에 참석했던 한 등급위원(지금은 등급위원을 사퇴함)이 돋보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당시 그는 토론회가 끝나자 “무작정 찬반 의견을 개진하는 것만으로는 전체 관객의 반응을 확인하기 어렵다. 여기 모인 관객만이라도 거수로 18세 등급이 적절하냐, 제한상영가 등급이 적절하냐를 표시해달라”고 열의를 보였다. 반면, 모 등급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영화를 일반 극장에서 상영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는 식의 섣부른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등급분류 재심이 있은 뒤, 영화인회의를 비롯한 각종 문화예술단체들이 “재심회의록을 공개하고, 구체적인 등급분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자”고 요청하고 제안했지만, 등급위는 피하거나 묵살했다. 민예총의 안성배 정책기획팀장은 “일부 위원들이 이의권을 행사할 경우, 심의를 다시 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면서 “내부적인 소통구조를 갖고 있지 못한 기구가 외부와의 의견 교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등급위가 제시한 여론 수렴 행위라곤 지난 9월23일 결과를 재차 제시한 리서치 조사. 그러나 이 또한 아쉽기 그지없다. 등급위는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여론조사에서 위원회의 기능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음란, 폭력물의 규제’(90.1%), ‘청소년 보호’(39.3%)의 순으로 나타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뭉뚱그린 질의와 답변결과가 여론을 적절하게 캐치했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개별작품의 등급분류가 적절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서 주기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거나, 개인 또는 각종 단체들의 권고 등급도 함께 기재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이것이 문제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