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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동성애 상업영화 등장 ‘로드무비’
2002-10-08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긴 머리와 거친 수염의 그는 ‘정글’과도 같은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의 리더격이다. 언뜻 보기엔 ‘마초’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 앞에 어느날 증시폭락으로 모든 걸 날려버린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밥 한끼, 몸 뉘일 좁은 공간, 누구하나 챙겨주지 않는 그곳에서 이 남자의 다른 한 남자에 대한 누추한 사랑은 시작된다.동성간의 섹스장면에서 서울역의 노숙자 집단으로 이어지는 <로드무비>의 전반부는 이야기도, 화면도 거칠고 강하다. 카메라는 동성애자나 노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지닌 채 거침없이 휘둘러댄다. 그런 점에서 몹시 도발적이다.돈이고 아내고 미래마저 잃은 ‘먹물’ 석원(정찬)은 이제 거친 노동으로 삶을 살아온 대식(황정민)에 기대어 여행을 떠난다. 아마 대식이 없으면 석원은 죽을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동성애혐오자인 그가, 대식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 뒤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내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부두의 얼음공장에서, 미시령의 산장에서, 채석장에서 구비구비 돌며 이어가는 이들의 여정은, 이질적인 두 사람 만큼이나 순탄치 않다. 하지만 대식이나 석원 모두 세상에서 밀려난 소외된 인물들. 여행길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일주(서린)나, 민석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로드무비>는 절망의 끝에서 만난 이들의 진한 멜로영화가 된다. 극단적인 인물들의 상황이 의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떠나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지독히도 깊은 상처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뒤에 따라붙는 명사가 무엇이든 ‘첫’이란 형용사가 붙은 작품은 이런저런 칭찬과 비난을 걸머져야 하는 운명이다. 첫 동성애 상업영화인 이 작품 또한 그 평가에서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본격적인 동성애영화라 이름붙이긴 힘들지만, 동성애자 대식의 캐릭터나 진지한 드라마를 펼쳐보인 것 만으로도 <로드무비>는 ‘첫’이라는 수식어 값을 했다. 특히 중반부 풍부한 색감의 영상은 당장 여행을 떠나도록 채근할 정도로 아름답다. 장면의 파격성에 비해 조심스럽게 계산된 이야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사랑도 우리와 똑같다”는 감독의 메시지를 놓고 관객과 ‘소통’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18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