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오스카와 루신다>
2002-10-09

인생을 건 도박

Oscar and Lucinda 1998년, 감독 질리언 암스트롱 출연 랠프 파인즈 EBS 10월12일(토) 밤 10시

“우리는 신의 존재에 대해 내기를 건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내기거는 것이다.” <오스카와 루신다>는 이상한 드라마다. 첫눈에 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코스튬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의상이나 시대적 흐름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오스카와 루신다>는 여성감독의 영화다.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은 호주 출신 감독으로 우리에겐 <작은 아씨들>(1994) 정도가 알려져 있다. 무던하면서 캐릭터의 심리를 강조하는 연출력으로 암스트롱 감독은 <오스카와 루신다>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편집증과 광기, 그리고 종교적 회의에 빠진 인간 군상을 들여다본다.

<오스카와 루신다>는 멀리 떨어진 채 서로를 알지 못하고 성장한 어느 남녀의 이야기다. 오스카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인 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로 떠난다. 호주의 오지에서 자란 루신다는 적극적인 성격의 아가씨다. 이 두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는 것은 도박이다. 오스카와 루신다는 카드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도박을 즐기는 것이다. 호주행 배에 오른 오스카는 루신다를 우연히 만나고 둘은 열정적으로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루신다를 사랑하게 된 오스카는 그녀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더욱 무모한 도박을 벌이게 된다.

<오스카와 루신다>는 호흡이 매우 느린 드라마다. 우리는 내레이션의 도움을 빌려 인물들의 과거까지 거슬러오른다. 오스카라는 남자아이의 어린 시절로부터 그의 정신적 불안의 근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후 오스카는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할 만한 루신다를 만난다. 그런데 둘의 사랑이 쉽게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곤혹스럽다고 할 만큼 영화는 느린 속도로 도박의 늪에 발을 디딘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들이 카드게임 등에 몰입하는 이유는 흥미롭다. “외롭기 때문에” 그리고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쉴새없이 도박을 벌인다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오스카는 더욱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데 연인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유리로 만든 교회를 짓겠노라고 공언하기에 이른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오스카와 루신다>는 베르너 헤어초크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훨씬 소박하다. 영화의 흐름은 물 흐르듯 부드럽게 흘러가고 소설책을 읽듯 이같은 리듬은 영화의 끝까지 이어진다. 오스타와 루신다, 두 남녀가 항해 도중 도박을 벌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폭풍이 몰아치면서 배는 흔들리고 둘은 테이블 위에 카드를 펼쳐놓은 채 게임을 벌인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자신들의 분열증을 공개한다. <오스카와 루신다>는 비극적인 드라마다. 동시대가 배경인 여느 영국 작가들의 소설에 비하면 호주라는 특수한 공간을 강조하고 있는 피터 캐리의 원작에,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은 영화적인 품격을 덧입혔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