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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볼권리는 어디로 갔나
2002-10-25

작년까지만 해도 “개봉 일주일 만에 간판내린다”는 말은 최악의 흥행참패를 표현하는 일종의 관용구였다. 그러나 이제 ‘일주일’이라는 단어는 ‘하루’로 고쳐써야 할 것같다. 박희준 감독의 <남자 태어나다>가 국내 최대규모 극장인 메가박스를 비롯해 씨지브이, 대한극장 등 주요 개봉관에서 개봉 하루 만인 12일에 간판을 내린 탓이다. 나머지 개봉 극장들도 13일 이후에는 거의 모두 다른 영화로 교체했다.

예매를 하고 개봉 다음날 오후 강남의 한 멀티플렉스에 간 어느 관객은 “다른 영화로 바꿔서 보라”는 말을 들었다. 박스오피스는 보통 주말 흥행 성적으로 결정되는 데 이 영화는 흥행 성적을 기록할 기회조차 빼앗긴 셈이다. 주말 예매가 안된다는 관객들의 문의전화를 받고 사태를 알게 된 박 감독은 직접 극장들을 찾아다니며 “주말까지 만이라도 상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극장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상영 전 상영시기를 두고 제작사와 마찰을 빚었던 배급사 길벗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길벗의 김길남 대표는 “상영 전 홍보가 안돼 개봉 연기를 제안했지만 제작사의 무리한 강행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극장이 자선사업하는 곳도 아닌데 점유율 5%도 안되는 영화를 어떻게 계속 상영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다르다. 개봉 다음날 영화를 보러갔다가 그냥 돌아왔다는 한 관객은 “메가박스의 모기업인 온미디어가 배급하는 영화 포스터에 가려 <남자 태어나다>의 포스터는 아예 눈에 띄지도 않던데 어떻게 관객이 선택하지 않았다고만 할 수 있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볼 권리를 빼앗긴 관객들이 모여 지난 13일 인터넷에 <남자 태어나다> 살리기 본부’라는 카페(cafe.daum.net/namzazzan)를 만들었다. 뒤늦은 관객들의 응원에 힘입어 서울의 스카라 극장, 티파니 극장, 광주의 엔터시네마가 20일부터 다시 간판을 올리기 시작했다. 몇년 전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그 매력 가운데 맨 먼저 꼽힌 것이 선택의 폭이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시대에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