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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토리 팀장 구정아 뉴욕의 키노 인터내셔널에서 보낸 한철(2)
2002-10-26

그해 뉴욕의 여름은 뜨거웠네

>> Aug. 9

‘도화’라는 한국 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진 오드리 토투의 생일파티에 끼었다. 식당주인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스탭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그의 동업자가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사실. 현재 이스라엘 출신 감독 아모스 콜렉과 뉴욕에서 새 작품을 준비 중인 오드리 토투는 <아멜리에>의 성공으로 본의 아니게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 이번엔 좀 강한 캐릭터를 맡기로 했다고 한다. 뉴욕에 온 여배우 지망생을 연기하기 위해 그녀는 요즘 영어를 연마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 각지의 배우들을 흡입하는 곳, 바로 뉴욕이다.

>> Aug. 11

이스라엘의 저명한 아모스 기타이 감독이 사무실을 찾았다. 키노는 <카도쉬 >를 비롯해서 그의 영화를 여럿 배급한다. 독립배급사답게 키노는 감독이나 제작사와의 관계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데, 어떤 영화의 경우 다소 큰 규모의 영화지만 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선금없이 들여와 배급하기도 한다.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배급사의 상술이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때로 그런 영화가 상영수익을 따내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요소들이 흥행에 작용을 끼친다는 것. 기타이 감독의 영화가 박스오피스를 호령하진 못해도 미국 전역의 유대인 공동체의 요구가 들끓는 이상 개봉하면 여전히 흑자라 한다.

>> Aug. 15

뉴욕의 전통적인 아트하우스 필름 포럼(Film Forum)은 클래식과 논쟁적인 영화를 나란히 상영한다.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The Trials of Henry Kissinger> 같은 영화도 트는 것이다. “의미가 있는데도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작품을 위해 우리 극장은 존재한다”고 극장 대표 카렌 쿠퍼는 단호하게 말한다. 심의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하다. “우리는 등급을 받지 않고 상영하고 있다. 거슬리는 영화가 있다면 와서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접한 <죽어도 좋아> 사태가 동시에 떠오른다. 앞으로 한달 동안은 ‘구로사와 & 미후네’라는 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배우 미후네 도시로와 함께 작업한 작품들이 진열되는 것. 나의 초이스는 <The Bad Sleep Well>이다.

>> Aug. 22

목요일 한적한 오후, 프리츠 랑의 영원한 고전 <메트로폴리스>의 디지털 복원판이 상영되고 있는 지그필드 극장은 여전히 북적인다. 맨해튼의 극장가에 위치한 이 극장은 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대작들을 상영하는 공간. 여름에 반팔 차림으로 들어갔다간 낭패를 보는 무지하게 크고 썰렁한 극장. 내가 열심히 ‘찌라시’(one sheet flyer)에 상영날짜와 장소를 알리는 스티커를 붙였던 <메트로폴리스>는 대박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피부색이 다르시다구요? 걱정마십시요. 다민종, 다민족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들이 뉴욕에선 끊이질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필름포럼이 차려준 식단은 진수성찬.▷▶ 미국 내 120여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메트로폴리스>는 연일 매진 기록중.

>> Aug. 30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회고전을 준비할 요량으로 할 하틀리 감독의 프로덕션 ‘파서블 필름즈’(Possible Films)를 방문했다. <심플맨> <트러스트> <아마츄어> 등으로 나를 감동하게 했던 그는 온화한 미소와 조용한 말씨로 맞아주었다. 작고 아담한 사무실은 그가 연출한 작품들의 포스터들로 장식되어 있고, 사무실 한쪽엔 편집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다음주면 하버드대학에서의 강의를 위해 뉴욕을 떠난다는 그에게서 프린트의 출처, 판권 소유자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소득. 하지만 작품의 해외 배급을 맡았던 배급사들이 지난해와 올해 사업을 접는 바람에 그의 영화들을 품고 귀국하겠다는 내 소망의 실현은 요원하다.

>> Sept. 12

영화배우 배두나씨가 뉴욕에 여행을 왔다는 소식을 접수하자마자 곧장 그에게 원군을 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친절하게도 <고양이를 부탁해>의 홍보활동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서둘러서 한국계 매체와 약속을 잡고, 뉴욕의 프레스와도 서둘러서 홍보 일정을 잡느라 정신없다. 개봉은 멀어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하겠지만, 심적으론 천금준마(千金駿馬)를 얻은 듯하다.

>> Sept. 16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탐 크루즈가 쫓기던 뒷골목- 거기는 워싱턴이라고 하지만- 을 연상케하는 빌딩숲. 그 위로 조각난 파란 하늘을 엿보는 것도 숨통을 트기에 좋은 방법이다. 이런 가을날이면 근처 델리에서 점심거리를 사다가 공원에서 동료들과 오순도순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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