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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토리 팀장 구정아 뉴욕의 키노 인터내셔널에서 보낸 한철(1)
2002-10-26

그해 뉴욕의 여름은 뜨거웠네

구정아(29)씨는 국내의 독립영화 감독들에겐 익히 알려진 인물.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에서 일하고 있는 탓에 종종 ‘보쌈꾼’으로 불리기도 한다. 각종 영화제를 돌아다니면서 괜찮은 작품이 눈에 띈다 싶으면 만사 제쳐두고 감독을 설득해서 작품의 국내외 배급 대행을 따내는 일이 그의 임무. 그런 그가 올해 초 로테르담영화제에 들렀다 만난 일본인 친구 히요이 야마모토의 주선으로 뉴욕의 독립배급사 키노 인터내셔널에서 2개월간의 인턴십 과정을 갖게 됐다. 뉴욕에서 <고양이를 부탁해>를 홍보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일감. 하지만 빈한하고 일천한 문화환경의 서울을 뒤로 하고 인디펜던트 필름의 산실이랄 수 있는 뉴욕을 찾은 그의 호기심이 어디 한 군데 머물렀을까. 욕심 많은 그의 촉수에 꼼짝없이 걸려든 뉴욕의 영화풍경을 여기에 일지 형식으로 옮겨놓는다. 지면 사정상 필자가 보내온 글의 상당 부분을 싣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편집자

>> Jul. 31

‘키노 인터내셔널’로의 첫 출근. 회사 이름만큼이나 구성원들의 면면도 국제적이다. 일단 히요이는 일본인. 내 옆의 홍보팀장(팀원없는;;;) 로드리고는 브라질에서 유학온 친구. 비디오 부서의 폴은 스페인어와 영어를 번갈아 사용하는 라티노다. 그 먼 곳, 한국에서 날아온 인턴사원인 나까지 합하면, 정말 그렇지 않은가.

>> Aug. 1

키노의 25주년 파티. 회사 생기고 이렇게 큰 파티는 처음이라고 동료들 모두 들떠 있다. 키노는 ‘뉴요커 필름즈’(New Yorker Films)와 더불어 뉴욕에서 가장 큰 독립배급사. 아담하지만 내실있게 커온 이 회사의 생일 축하를 위해 리안 감독과 작업하는 데이비드 리, <스모크>의 프로듀서 히사미 구로이, <먼지의 딸들>의 독립영화 감독 줄리 대시를 비롯해 뉴요커 필름즈, 매그놀리아 픽처스(Magnolia Pictures), 차이트가이스트 필름스(Zeitgeist Films), 웰스프링(Wellspring), 곧 김기덕 감독의 <섬>을 개봉할 엠파이어 픽처스(Empire Pictures) 등의 관계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 Aug. 3∼4

올 여름 들어 수은주가 가장 높이 오른 날. 악취로 악명 높은 뉴욕 지하철에 앉아 <빌리지 보이스>를 펼친다. 맨해튼에서 퀸즈로 옮겨간 ‘무빙 이미지’(American Museum of Moving Image)를 찾아가는 길. 이명세 감독님과 앨런 파큘라의 를 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EBS에서 방영할 때 놓쳤던 기억 때문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걱정된다. 극장 앞에서 난 또 한번 나자빠진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 진정 이곳은 ‘뉴욕’이었던 것이다. 일요일에 들렀던 라틴아메리카영화제에서 들었던 상념 하나. 다인종, 다민족을 대표하는 각종 문화행사, 영화제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뉴욕은 ‘용광로’(melting pot)가 아니라 ‘샐러드바’(salad bar)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다. 섞여 들어가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과 재료가 어우러져 커다란 접시에 담겨진다는 것.

(왼쪽부터 차례로)▷▶ 로드리고는 한국의 나랑 비슷한 신세. 팀원없는 팀장의 슬픔을 누가 알리요.▷▶ 뤼미에르의 첫 영화부터 <텔미썸딩>까지, 그동안 키노가 배급했던 영화들의 포스터 또한 25주년 생일파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스트.▷▶ 한국의 시네필들에게 키노의 DVD창고는 지상의 낙원.

>> Aug. 5

키노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42번가 브로드웨이 근처. 이른바 ‘패션 디스트릭트’(Fashion District)로 불리나 뉘앙스와 달리 청계천이나 남대문의 의류, 직물 도매상을 연상시킨다. 외향과 체면에 신경 쓰지 않는 회사의 기풍과 딱 맞아떨어진다. A4 종이에 찍힌 현관의 문패 아닌 문패도 이제 보니 익숙하다. 키노의 업무는 극장배급, 비극장 배급, 마케팅, 홍보, 총무, 고객관리 그리고 비디오 부서- 총 5명으로 구성된- 로 단충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른 배급사와 구별되는 점은 비디오 부서의 존재. 이 부서에서 키노 총매출의 70% 정도를 올린다고 한다. 창고에는 보기만 해도 눈물이 죽죽 흐르는 세계 명작 비디오와 DVD가 빼곡히 쌓여 있다(순간 문화학교 서울 등에서 일하는 시네필 친구들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직접 미국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비디오숍과 개인 고객의 손으로 비디오/DVD를 배달하고 있다. 독립적인 배급이란 이런 것이다.

>> Aug. 7

전화받는 일은 고역이다. “May I ask who’s calling”이라 질문을 던지고 나면, 이내 공포의 순간이 엄습한다. 3자, 기껏해야 4자인 한국이름에 익숙한 나로선 그들의 이름을 단번에 알아듣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인턴으로 있으면서 남의 사업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상대의 친절한 인내심을 기대하며 한자한자 스펠링을 받아 적는다. “아니 그 좋은 영화를 왜 아무도 배급하지 않는 거죠”라고 항의하는 일반 관객, 전국 각지에서 비디오 카탈로그를 보고 전화로 주문하는 고객, 거기에 각 대학, 박물관, 상영관의 영화 담당 큐레이터 등의 전화가 빗발친다. “데이비드 누구시라구요”“데이비드 보드웰이오.” 앗, 그는 바로 대학원 때 본 그 두껍디 두꺼운 책들을 쓴 당사자 위스콘신 대학교수인 그는 이번 부산영화제에 방문할 예정인데 볼 만한 한국영화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세상, 참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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