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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대중영화
2002-11-08

너는 졸고,나는 웃고!

영화제는 가끔 인내의 한계를 요구한다. 한참을 자다 일어났는데도, 잠들기 전과 별로 다를 것 없는 그림이 펼쳐지고 있는 경험. 영화제에 가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거장들의 이름 밑에 묻힌 재미있는 영화도 몇편은 있다. 이 영화들만 골라본다면 올해 부산영화제에선 단 한순간도 잠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문석/이영진/김현정

마이 빅 팻 그릭 웨딩 My Big Fat Greek Wedding

▶ 오픈 시네마/ 미국/ 조엘 즈윅/ 2002년/ 95분

▶ 11월17일 오후 2시30분 시민회관, 11월22일 오후 5시 시민회관

내 사위가 미국인이라니! 그리스계 미국인 처녀 툴라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 그리스 아이들을 한바구니 낳아야 하는 삶에 염증을 느끼던 그녀는 컴퓨터를 배우고 여행사에 취직하면서 활력을 찾는다. 때마침 찾아온 사랑. 그러나 사위감 이안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안 아버지는 당황하고 낙담한다. <마이…>는 주연 니아 바르달로스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리스계 혈통을 가진 아내의 부탁으로 이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은 사람은 배우 톰 행크스. 그러나 “할리우드가 아닌, 진짜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평을 얻을 만큼 원작의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입소문으로 엄청난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답게 <마이…>는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모여 있다. 엄청난 수의 그리스계 친척들과 마주한 이안의 부모가 남자들 이름이 전부 ‘닉’이라는 소개에 대경실색하는 상견례 장면은 그중 백미. 감독과 작가는 폐쇄적으로 묶인 그리스계 공동체를 정감있게 관찰하면서 좀더 넓고 너그러운 공간으로 이끌어냈다.

8명의 여인들 8 Women

▶ 오픈 시네마/ 프랑스/ 프랑수아 오종/ 103분

▶ 11월16일 오후 7시 부산시민회관, 11월20일 오후 5시 부산시민회관

네년이 죽였지? 올해 초 프랑스에서 대성공을 거둔 특이한 코미디 뮤지컬.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교외의 한 집에 가족들이 속속 모여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재회의 기쁨을 채 나누기도 전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이 집의 유일한 남성인 마르셀이 살해된 것이다. 도로가 폐쇄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으니 범인은 8명의 여인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는 노릇. 이때부터 죽은 이의 장모, 아내, 딸, 동생, 하녀, 정부가 서로 물고 무는 의심의 게임을 벌인다. 이 시끌벅적 요절복통 코미디는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우선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에마뉘엘 베아르, 그리고 프랑스 최고의 청춘스타 비르지니 르도양까지 기용한 초특급 캐스팅을 꼽을 수 있다. 게다가 촐랑거리는 드뇌브와 강박적인 노처녀 역의 위페르 등 우아하기로 소문난 대스타들의 ‘망가진’ 연기라니. 극단적인 표현 양식과 과감한 주제 선정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오종의 상업영화라는 점 또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요소. 어쩌면 이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는 우리 정서와 다를지도 모르지만 중도에 포기해선 안 된다. 즐거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 You Shoot, I Shoot

▶ 아시아 영화의 창/ 홍콩/ 에드몬드 팡/ 2001년/ 98분

▶ 11월18일 오후 2시 대영1/ 11월20일 오후 5시 메가박스7

킬러들의 불경기,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킬러 바트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닥친 뒤 일감이 줄어 고민하다가 한 고객의 주문에서 영감을 얻는다. 살해과정을 촬영해 비디오테이프로 서비스하는 것. 바트는 마틴 스콜세지를 존경하는 포르노영화 조감독 추엔을 고용해 대히트를 기록한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는 말장난 같은 제목처럼 경쾌한 코미디다. 좁은 땅에서 부딪치며 살기 때문에 증오가 넘치는 홍콩은 킬러들의 낙원. 공식사이트의 이 설명은 씁쓸하지만, 한순간도 우울한 전제에 묻히지 않고 키득거리듯 장난을 친다.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을 동경하는 바트나 스콜세지처럼 비디오를 찍는 추엔의 모습도 귀엽다.

소매치기 Pickpocket

▶ 아시아 영화의 창/ 스리랑카/ 린턴 세마쥬/ 2002년/ 85분

▶ 11월15일 오전 11시 부산2, 11월17일 오후 8시 메가박스6

그는 아내의 남자가 아니었다. 소매치기 카말은 임신한 아내와 갈등을 겪고 있다. 아내는 훔친 돈으로 먹고 산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한다. 평소처럼 한 남자의 지갑을 훔친 카말은 그 안에서 아내의 사진을 발견하고 의혹에 사로잡히지만, 대놓고 묻는 대신 직접 그 남자를 찾아나선다. <소매치기>가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분명해보인다. 피부색만큼이나 그늘 짙은 카말의 얼굴, 끊임없는 소음이 불안을 예고하는 기찻길옆 초라한 보금자리, 물기처럼 배어 있는 무기력. 스리랑카 거리를 한조각 칼로 베어낸 것처럼 들이미는 <소매치기>는 통속적인 비극의 드라마 안에 어느 부부의 흔들리는 관게를 감싸안았다.

광복절 특사 Jail Breaers

▶ 오픈 시네마/ 한국/ 김상진/ 2002년/ 119분

▶ 11월19일 오후 5시 시민회관, 11월20일 오후 2시 시민회관

우리, 돌아갈래! 감옥으로? 황당한 캐릭터와 만화적인 설정으로 무장한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에 이어 박정우 작가와 손잡고 만들었다. 탈옥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인 무석(차승원)과 애인의 변심 때문에 홧김에 탈출하게 되는 사기꾼 재필(설경구). 비좁은 땅굴을 통해 세상 공기를 마시는 데까진 성공하지만, 이내 광복절 사면자 명단에 포함됐음을 알게 되고, 다시 감옥으로 귀환하기 위해 죽을 힘을 쓴다는 줄거리다. 이들을 보호하는 무리들과 뒤쫒는 무리들이 얽히고, 감옥 안과 바깥의 상황이 대비되는 것은 여느 소동극과 다르지 않지만, 매 기점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재필과 무석의 줄다리기 덕택에 극적 재미는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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