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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다큐멘터리(1)
2002-11-08

카메라로 쓴 생존의 기록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일 다큐멘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 되돌아봐야 할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부터 복장도착자를 아버지로 둔 가족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감히 극영화로 접근하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영화제 주최쪽이 귀띔한 대로 다큐멘터리의 수준이 높고 대중적 재미도 만만치 않다. 부산에서 극영화보다 극적인 다큐멘터리의 세계로 흠뻑 빠져보시길.남동철 / 문석

연안에서 온 딸 Daughter from Yan’an

▶ 와이드앵글/ 일본/ 이케야 카오루/ 2001년/ 120분

▶ 11월18일 오후 5시30분 부산3, 11월20일 오후 8시 부산3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역사의 격랑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가 <연안에서 온 딸>은 70년대 자신도 모르는 새 문화혁명의 최전선에 섰던 10대 소년소녀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영화는 새벽을 가르는 기차 소리로 막을 연다. 기차 안의 한 여인은 생면부지의 아버지를 만나기 앞서 설레임과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도 내 생각을 했을까요” 그녀의 이름은 하이시아, 삭막한 시골 연안에서 태어나 농부의 아내가 된 27살 여인은 베이징에 친아버지가 살고있다는 소식에 눈물 흘린다. 베이징에 사는 아버지 왕루청, 그 역시 연안에 두고 온 딸이 찾아온다는 말에 주체 못할 울음을 터뜨린다. “왜 나를 버렸나요”라는 딸의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와 딸의 눈물이 비롯된 곳은 27년 전 연안이다. 문화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혁명의 순결한 정신을 지키고자 선생님을 연단에 끌어다놓고 자아비판을 시켰던 10대들이 있다. 이름하여 홍위병. 그들은 노동의 숭고함을 배우기 위해 연안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하방’이라 불리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혁명의 칼날이 자기 목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방에서 모랫바람이 불어오는 오지에서 중학생에 불과했던 그들은 혁명이 아니라 생존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연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 태어나 처음 부모의 품을 벗어난 아이들은 배고픔과 외로움에 지쳐 있었고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사랑이었다. 이제 50대가 된 한 사내는 홍수가 났던 그해 여름을 기억한다. 위기에 처한 소녀를 구해내고 소년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건 불법이었다. 혁명은 모든 연애를 금지시켰고 당 간부는 하방된 아이들을 감시했다. 소년은 재판에 회부되고 강제수용소에서 수년간 노역을 했다. 청춘은 치명적인 사랑의 흔적만 남기고 손 안에 모래처럼 흔적없이 흘러버렸다. 왕루청의 딸 하이시아는 그 시절 그렇게 위험한 사랑이 남긴 유산이다. 당 간부의 눈을 피해 연애가 시작되고 추운 겨울 두꺼운 코트로 감춰 아홉달을 버틴 하이시아는 태어나자마자 마을사람에 입양되어 길러진 것이다. 그뒤 아버지와 어머니는 혁명의 프로그램대로 이곳저곳을 다녔고 헤어졌다. 아버지는 지난 세월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유장한 멜로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문화혁명의 고통이 한 가족의 비극적 운명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연안에서 농사를 짓고사는 왕웨이라는 남자는 30여년 전 강간혐의로 오랫동안 강제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재판의 부당함에 치를 떤다. 왕웨이는 당시 고발을 했던 당 간부에게 진실을 묻고싶다. 그의 소원대로 카메라는 이제 할아버지가 된 당 간부의 집을 향한다. 여전히 왕웨이의 유죄를 주장하는 할아버지, 질문자는 더이상 묻지 못한다. “당시 난 불구인 아들을 먹여살려야 했다”는 할아버지의 회한에 찬 한마디는 그 역시 역사의 피해자임을 암시한다.

연안은 1935년 대장정의 종착지였다. 마오저뚱이 국민당군에 쫓겨 마침내 도착한 이곳에는 아직도 중국공산당의 증인들이 살아 있다. 황폐한 마을 한 귀퉁이에서 마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들은 말의 오줌으로 갈증을 달랬던 대장정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진짜 혁명은 거기서 끝난 것인가 영화는 아직 대장정 때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는 80대 할아버지와 50대가 된 문화혁명의 피해자와 겹쳐놓는다. 어쨌든 그들의 젊음과 열정과 사랑은 연안의 모랫바람에 묻혀 있다.

연안에서 온 딸 하이시아는 마침내 아버지를 만나고 그들의 재회를 기념해 베이징에서는 당시 하방된 동창생들이 다시 모인다. 술이 오가는 자리에선 “겨우 아문 옛 상처를 왜 다시 후벼대느냐”는 고함소리도 들린다. 과연 왜일까 하이시아를 베이징까지 인도했던 아저씨는 영화의 말미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그는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삶의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걸 입증하기 위해 살았다.” <연안에서 온 딸>은 역사라는 괴물에 물어뜯긴 ‘인간’의 기록이다.

350 위안 아이들 Three-Five People

▶ 와이드앵글/ 중국/ 린리/ 85분

▶ 11월18일 오전 11시 대영5, 11월21일 오후 8시30분 대영5

자본주의 중국의 마약중독 어린이들. 애초 이 영화의 감독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 기착지인 청도에서 며칠을 머물면서 그녀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12살짜리 소년 후지엔과 쳉보, 15살짜리 소녀 쳉리는 거지처럼 보이는 아이들이었지만, 실제로는 길 가는 여성의 귀걸이를 그야말로 ‘뜯어’내는 날치기였다. 더욱 그녀를 충격으로 몰고간 것은 그들이 모두 심각한 마약중독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그 가냘픈 팔뚝에 헤로인 주사를 꽂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있었다. 훔친 귀걸이로는 그들이 하룻동안 일용할 헤로인도 댈 수 없는데 말이다. 이들의 삶을 이렇게 몰고간 것은 어페이라는 사조직을 통해 푼돈을 긁어모으는 부패한 경찰과 청소년 마약 문제에 무관심한 당국 때문이었다. 절망적인 아이들을 보다 못한 감독은 자신의 촬영 대상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녀는 이들을 구렁텅이에서 구출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이들을 자신이 유학 중인 미국으로 데려가려고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허사로 끝나고 감독은 무력감과 분노에 젖는다. 이 기막힌 현실을 바라보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뜨거운 다큐멘터리.

거미살인 And Along Came a Spider

▶ 와이드앵글/ 이란/ 마지아르 바하리/ 2002년/ 52분

▶ 11월17일 오후8시30분 대영5, 11월21일 오후 5시30분 대영5

연쇄살인자의 초상, 이란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다. 이란의 도시 마샤드에서 매춘여성 16명이 연쇄살인을 당한다. 거미가 먹이를 잡을 때처럼 매춘부를 집안에 끌어들여 살해한 이 사건을 이란의 언론은 ‘거미살인’이라고 불렀다. 살인자는 39살의 남자, 그는 자신의 살인을 정당하다고 믿는다. 매춘을 하는 여자는 인간이 아니며 소, 돼지보다 못한 해충이라고 주장한다. 신의 뜻대로 살인을 집행했다고 믿는 이 남자는 16명을 죽인 다음 체포됐는데 감옥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매춘 반대 운동가’라 부르며 자신의 살인행위를 성스러운 투쟁이라 여긴다. 그것은 국외자의 눈에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살인자의 어머니, 아내, 아들은 살인자를 옹호한다. 잘못은 매춘여성에게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살인자의 인터뷰를 주축으로, 매춘이 금지된 이란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파는 여인들을 비춘다. 어린 아내에게 매춘해서 돈을 벌어오라고 시키는 남편, 에이즈가 무엇인지 모른 채 방치된 매춘여성들, 몸을 파는 여인에게 생계를 의지했던 거미살인의 피해자 가족 등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거미살인은 한편으론 매춘여성에게 극도의 혐오감과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다른 한편으론 여성을 매춘굴로 내모는 이율배반적인 사회가 낳은 돌연변이일 것이다.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 와이드앵글/ 한국/ 박기복/ 2002년/ 115분

▶ 11월17일 오후 5시 대영6, 11월20일 오후 8시 대영6

편견과 오해를 깨고 바라본 무속신앙의 실체. 자신의 몸을 귀신에게 빌려주는 여인에게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상상해본 적 있는가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는 제 몸을 희생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무당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천에 사는 박미정 보살은 27살에 내림굿을 받고 강신무가 됐다. 10년간 무당으로 살고 있지만 그녀는 자기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굿을 통해 죽은 자와 해후하고 화해와 용서의 눈물을 쏟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녀는 희생을 받아들인다. 진도의 강신무 박영자씨. 그녀는 무당인 동시에 평범한 촌아낙이다. 고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박영자씨의 삶은 물욕과 아무 관련이 없다. 진도의 세습무 채둔굴 할머니. 대를 이어 무당의 삶을 살았던 할머니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이땅에 얼마 남지 않은 세습무가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포항의 별신굿 풍어제로 시작해 채둔굴 할머니의 사망소식에 이은 동생 채정례 할머니의 씻김굿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무속신앙을 하나의 전통문화로 바라본다.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발전시켜가며 유구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무속은 다른 어떤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 핵심에 성스러운 희생정신을 담고 있다. 이제는 미신이라고, 사기라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씻김굿을 하며 오열하는 무당의 모습을 보노라면 당신도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냅둬> 등 부랑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박기복의 이번 작품은 제작에 3년이 걸린 영화다. 1년6개월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여러 가지 굿의 형태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깝지 않지만, 교양다큐멘터리의 내면에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희생하는 자의 성스러움이 숨쉬고 있다. 남도의 푸른 하늘과 추수가 끝난 텅빈 들판, 할머니들의 깊게 팬 주름과 신들린 무당의 눈물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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