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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작가영화(3)
2002-11-08

거장의 뒤를 밟는 성지순례

러시아 방주 Russian Ark

▶ 월드 시네마/ 러시아/ 알렉산더 소쿠로프/ 2002년/ 96분

▶ 11월20일 오후 5시 부산2, 11월22일 오후 8시 메가박스9

유럽문화의 박물관을 거니는 유령의 시선으로 본 러시아 300년 소쿠로프의 신작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자꾸 불편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일단 영화의 무대가 되는 에르미타쥐(Hermitage)는 1050개의 방, 2천여개의 창문, 120개의 계단, 대략 250만점의 전시물, 그리고 지붕 위에 176개의 조각상이 있다고 하는 그야말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여러 인물들, 즉 표트르 대제, 예카테리나 대제, 그리고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등은 물론이고 수많은 귀족들이 러시아 300년의 역사 속에 유럽문화를 아우른 광대한 프레임 속으로 차례로 등장했다 사라진다. 소쿠로프는 단 하나의 길게 이어진 시점샷으로만 구성된 영화를 기획하고 HD 디지털카메라와 유려한 스테디 캠 촬영술에 기대어 전대미문의 기이한 박물관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디지털의 미학을 통해 역사에 관한 비스콘티적 모럴리티를 다시 불러온 에릭 로메르의 <영국 여인과 공작>과는 달리, 소쿠로프는 여기서 온전히 비스콘티의 한 등장인물이 되어버린다. <러시아 방주>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사라져간 것들을 향한 매혹을 드러내왔던 한 영화작가의 이상한 열정 그 자체이다. 현재의 풍경을 어둠과 안개로 지워버리고 고집스레 항해에 나선 이 방주가 닻을 내릴 곳은 과연 어디일까.

아들 The Son

▶ 월드 시네마-비평가 주간/ 벨기에/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2002년/ 103분

▶ 11월15일 오전 11시 대영1, 11월 18일 오후 8시 메가박스5

21세기 핸드헬드 카메라에 담은 그리스 비극. 올리비에는 소년원에서 나온 아이들의 재활 교육을 위해 목공 일을 가르친다. 어느 날 이 학교에 한 소년이 찾아오는데, 올리비에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남몰래 그 소년의 뒤를 따라다닌다. 올리비에는 그 소년이 자기 아들을 죽인 죄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프란시스임을 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올리비에는 목재를 가지러 가자며 프란시스를 외딴 벌목원으로 데려간다. 인적이 없는 숲 속 벌목원에 다다른 두 사람. 올리비에는 아들의 복수를 할 것인가, 아님 용서할 것인가. 비극의 끝은 과연 어디가 될 것인가.

<아들>의 비밀은 늦게사 드러난다. 관객은 약 40분 동안 올리비에의 작은 움직임과 숨결로도 들썩거릴 만큼, 그의 귀와 목덜미를 가까이서 따라붙는 카메라를 따라, 그가 왜 그렇게 프란시스라는 소년에게 집착하는지를 모르는 채로 지켜봐야 한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비극의 역사를 깨달아가기 무섭게 이젠 복수혈전을 예감케 하는 벌목원으로 이끌려온다. 다르덴 형제의 핸드 헬드 카메라는 전작 <로제타>에서처럼 이번에도 세상 속으로 돌진한다. 사회적 마이너리티의 이야기들을, 그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데 의미를 두는 그들은 <아들>에 이르러 인류의 근원적인 비극 속으로 한발 더 다가간 느낌이다.

하폰 Japon

▶ 월드 시네마-비평가 주간/ 멕시코+스페인/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2002년/ 122분

▶ 11월15일 오후8시 메가박스6, 11월17일 오후 8시 메가박스9

안데스의 산자락에서 만난 삶 그리고 죽음. <하폰>은 길 위의 영화다. 길 위에 삶과 죽음, 좌절과 희망의 인간사를 겹겹이 포개놓은 영화다.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외딴 산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가 찾아들어간 황량한 자연은 숨을 거두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생의 욕망은, 안데스의 자연을 닮은 인디언 노파의 이해와 애정으로 깊은 잠을 깬다. 멕시코 출신의 신예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작품인 <하폰>은 여러모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길 위에서 삶의 진리와 철학을 발견하고 풀어가는 품새나, 가공하지 않은 자연과 아마추어 배우들에게서 수천 가지 표정을 이끌어낸 레이가다스의 솜씨는 남미영화계의 새로운 작가 탄생을 예감케 한다.

신의 입맞춤 Everyday God Kissed Us On The Mouth

▶ 월드 시네마/ 루마니아/ 시니사 드라간/ 93분

▶ 11월16일 오후 5시 메가박스5, 11월18일 오후 5시 메가박스9

분노와 절망의 살인. 오랜 수형생활을 마친 푸줏간 주인 드미트루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다. 그는 기차 안에서 도박을 하다 시비에 휘말려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스스로 기막혀하며 집으로 돌아온 드미트루 앞에 놓인 현실은 더 기막힌다. 아내와 동생의 눈치가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아내는 조카를 임신하고 있었다. 다시 분노해 살인을 저지른 그는 막막한 길을 떠난다. 올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VPRO 타이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한 야수인간의 뒤를 쫓아가며, 존재와 구원이라는 문제를 침착하게 던진다. 거친 흑백화면이 자아내는 절망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파티 피플 24 Hour Party People

▶ 오픈시네마/ 영국/ 마이클 윈터바텀/ 116분

▶ 11월19일 오후 2시 부산시민회관, 11월21일 오후 8시 부산시민회관

레이브의 고향으로 가는 화려한 파티. 1976년 맨체스터의 한 공연장에선 이후 대중음악을 뒤바꿔놓는 역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악명() 높던 섹스 피스톨스가 맨체스터를 처음 찾은 이날, 훗날 ‘매드체스터’라 불리는 음악 신은 시작됐다. 이 공연장에 있었던 이안 커티스, 숀 라이더 등은 얼마 뒤 밴드를 만들어 신나는 리듬과 흥분제 엑스타시와 격렬한 춤의 레이브 문화를 만들어낸다. <파티 피플>은 이 음악의 장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자, 이 문화를 주도한 팩토리 레코드의 사장 토니 윌슨의 연대기다. 영화는 윌슨이 조이 디비전, 해피 먼데이스, 뉴 오더 등 매드체스터의 영웅들을 탄생시키며 마약과 춤의 클럽 ‘하시엔다’를 만들어내고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 다큐멘터리 화면 또한 담고 있지만 <파티 피플>은 절대로 정연한 다큐가 아니다. 반대로 윈터바텀 감독은 이들 음악만큼이나 자유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풀어나간다. 감독은 토니 윌슨의 모습을 빌려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영화 중간에 와서 “이제부터 2막이다”라고 선언하거나, 카메오들을 소개하다가 “자세한 것은 DVD로 보여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 이 영화를 보려면 학구적인 자세는 포기할 것. 오로지 즐기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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