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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작가영화(1)
2002-11-08

거장의 뒤를 밟는 성지순례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감독의 이름을 보는 사람. 시네마테크의 크고 작은 행사가 늘 모자란 듯 아쉬운 사람. 영화제에서 일년치 영양 보충을 해야 한다고 덤벼드는 취미가 있는 사람. 동서양의 거장과 예비 거장들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올 부산영화제는 다종다양한 ‘성지순례’ 코스를 제공할 것이다.문석 / 박은영 / 김현정 / 유운성(영화평론가)

임소요 Unknown Pleasures

▶ 아시아 영화의 창/ 일본·한국·프랑스/ 지아 장커/ 2002년/ 113분

▶ 11월 16일 오후 5시 대영1, 11월 20일 오후 8시 대영1

중국 탄광촌 아이들의 ‘청춘잔혹이야기’. <소무>와 <플랫폼>에 이은 지아 장커의 세번째 장편 <임소요>는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했던 단편 <공공장소>와 <개들의 처지>의 무대가 되었던 바로 그곳, 샨시성(山西省) 따퉁(大同)에 거주하는 19살 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서로 동갑내기인 빙빙과 샤오 지는 영락한 탄광촌인 따퉁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쏘다닌다. 빙빙은 가끔 여자친구를 만나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를 빌려보는데 그녀는 곧 대학입시를 치를 예정이며 합격하게 되면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샤오 지는 어느 날 댄서 차오차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에겐 과거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나 지금은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빙빙과 샤오 지의 비루한 삶은 출구가 없어보이고 결국 그들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임소요>는 보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서는 끝내 한없이 슬픈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중국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소요>는 여기 이곳 아시아에 덧입혀진 자본의 시간을 눈과 귀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배경들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게 뒤섞여 있는 동시대의 징후들- 댄서를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주류 홍보 이벤트, 따퉁의 공기를 가르는 복권광고, 미군기의 중국영공침범이나 베이징까지의 철도건설계획을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 등- 은 또한 인물들과도 충돌하면서 모순과 균열의 지점들을 때로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노출시킨다. 가령 차오차오와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샤오 지가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 대해 떠들어대는 장면과,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역시 <펄프픽션>을 모방한 그들의 댄스장면은, 정말이지 젠체하는 오마쥬나 우스개로 끼워넣은 패러디가 아니라 비통한 진심이 담긴 자화상인 것이다. 미학적 과시로 넘쳐나는 거장들의 영화들 틈에서, 지아 장커의 <임소요>는 영화작가 자신이 놓인 현실에 대한 냉철한 사유의 흔적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영화이자 부산을 찾을 여러분이 꼭 봐야 할 영화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름다운 시절 The Best of Times

▶ 2아시아 영화의 창/ 대만, 일본/ 장 초치/ 2002년/ 109분

▶ 11월16일 오후 2시 대영1, 11월20일 오후 5시 대영1

가진 것 없는 젊음, 총 한 자루를 얻었다. 첫장면을 꼭 기억해두고 싶은 영화가 있다. 막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낮고 맑게 깔리는 음악 속에 하루를 시작하는 소음이 섞여들고, 카메라가 부엌과 식당과 방을 침착하게 오가는 <아름다운 시절>이 바로 그런 영화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번 끌려들어간 시선을 접을 수도 없다. <아름다운 시절>의 화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십대 소년 웨이. 불치병을 앓는 누나가 있는 웨이는 사촌 지에와 함께 범죄조직 수금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둘은 첫번째 임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권총까지 한자루 받아들지만, 성미 급한 지에가 그 총으로 다른 조직 보스를 살해하면서 궁지에 빠지게 된다. <아름다운 시절>은 범죄영화와 가족영화, 성장영화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처럼 들어차 있는 영화다. 총을 얻고 기뻐하는 아이들, 도망간 아이들이 보내는 한때, 그들이 막무가내로 붙들고 있는 믿음. <아름다운 시절>은 아무런 할 일을 찾아낼 수 없는 이 젊은이들의 무력한 현실을 서글프면서도 희미하게 빛나도록 담아냈다.

금요일 밤 Friday Night

▶ 월드 시네마/ 프랑스/ 클레어 드니/ 2002년/ 90분

▶ 11월15일 오후5시 대영1, 11월22일 오후5시 메가박스6

충동적인, 그러나 예비된 일탈의 하룻밤. 모두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추운 겨울의 금요일 밤은 특히 그렇다. 내일이면 남자친구와 동거에 들어가는 로르는 저녁 약속을 위해 차를 달려보지만, 교통 체증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고, 인내심을 잃은 사람들은 도로 위에서 우왕좌왕한다. 그 혼란 속에 정지화면처럼 홀로 서 있던 남자가 로르의 차 안으로 들어오고, 그 밤에 그들은 헤어짐과 만남을 거듭한다.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대상이고 객체였던 여성의 자리를, 클레어 드니는 남성에게 물려준다. <아름다운 직업> <잠이 오지 않아> 등에서 남성의 육체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았던 클레어 드니는, <금요일 밤>에서도 하룻밤 일탈의 자유와 주도권을 여성에게 쥐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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