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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죽이는 모순, 자백해 보자”
2002-11-14

개막작 <해안선> 김기덕 감독 인터뷰

올해 개막작 선정은 상당한 고심의 산물이었을 것 같다.언제나 평단의 호오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영화를 만들어온 김기덕 감독의<해안선>은 무난한 선택이라기보다 공격적인 선택이다.하지만<해안선>이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하다.민간인을 쏘아죽이고 미친 어느 해안초소 군인의 이야기인<해안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분단의 아픔을 파헤친 작품이기 때문이다.다음은<해안선>촬영현장과 개막작 시사 전에 전화로 이뤄진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영화를 보기 앞서 역사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김기덕식’ 문제의식의 실마리를 파악해보자.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영화를 홍보하는 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개막작 선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운 결정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반면 걱정도 된다. ‘개막작’하면 만장일치로 좋은 영화이길 기대할텐데 그렇게 받아들여질지 우려되는 점도 있다.

-<해안선>은 어떤 영화라고 간략히 소개한다면?

=이전 영화와 크게 다르진 않다. <수취인불명>의 연장선상에 있다.한반도에 전쟁이 끝났지만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을 해안초소 군인들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자해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찍었고 그렇게 봐줬으면 싶다.

-<해안선>은 매우 구체적인 정치적,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악어> <파란 대문> <섬> <나쁜 남자> 등 좀더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영화와 달리 <야생동물 보호구역> <수취인불명> <해안선>은 역사적 맥락이 있다. 군대라는 집단에서 경험한 어떤 것이 투영돼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분단의 모순을 그리고 <수취인불명>에서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그린 것처럼 <해안선>도 어떤 대치상황을 표현하고 있다.이는 남과 북의 대치에서 비롯된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끼리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모순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간첩이 들어온다고 삼면이 바다인 나라의 해안선에 모조리 철조망과 군부대가 있다.많아야 1년에 1∼2명 들어올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그래서 이상하게 해안에만 감도는 적대감,긴장감, 초조함이 있다.사실 이것은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가 아니라 매우 민감한 소재이다. <해안선>은 우리가 우리를 죽이는 모순에 대해서 솔직히 자백해보자는 것이다.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메시지에 공감할지 모르지만 정작 하고 싶은 얘기가 꼭 군대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그런 거 아닌가 싶다.구획을 지어놓고 적은 저 너머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죽이려 드는 것 아닌가.

-다른 한편 <해안선>은 가장 홀대받은 영화 가운데 하나인 <실제상황>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실제상황>에서 증오심으로 인해 살인에 이른 한 남자의 모습이 <해안선>에 투영돼 있다.

=졸병이 고참에게 대드는 하극상에 대한 이야기가 비슷할 거다. 군대에선 물리적 우월성이 지적인 우월성을 누르는 일이 흔하다. 매우 체계적이고 확고한 것 같지만 군대에서 질서는 겉보기만큼 완전하지 않다. 계급장이 그걸 은폐할 뿐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스타와 작업하지 못했다.이번에 장동건과 작업하게 됐는데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다.어차피 김기덕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닌데 스타를 기용함으로써 흥행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건 아닌가.

=부담스런 것은 없다. 장동건도 그런 부담이 있다면 출연할 수 없다고 했다. 장동건이 출연하면서 더 멋진 엔딩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는데 본인 스스로 거부했다. 작품 때문에 여러 번 만난 뒤 촬영을 시작했지만 볼수록 좋은 배우인 것 같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해안선>은 ‘경계’라는 단어가 핵심인 것 같다.출입통제구역과 관광지,군인의 의무와 살인,정상인과 미친 사람,고참과 졸병,군대질서와 사회질서 등의 경계가 있고 영화는 그걸 넘나들며 교란시킨다. 동어반복이라는 말도 듣겠지만 김기덕 영화의 주제 중 하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쁜 남자>에서 유리를 통해 표현된 것이 <해안선>에선 철조망을 통해 드러난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면 유리를 깨야 하지만 <해안선>의 철조망은 다가가면 찔리는 것이다. 영화 속 해병대 초소 연병장에 철조망으로 네트를 만든 족구장을 만들었고 족구장 바닥에 남과 북의 지도를 그렸다. 군인들은 단순한 게임에서도 주입된 이데올로기를 반복한다.그게 내가 이 사회에서 거듭 느끼는 답답함이기도 하다.완전히 길들여져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바다만 해도 그렇다.그건 우리 것인데 남에게 내주고도 그건 원래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당신의 영화는 야외 공간이 중요하다. 이번에 촬영장으로 택한 위도도 그럴 텐데 관광으로 먹고사는 을씨년스런 마을과 아름다운 자연,거기 떡 하니 버틴 해병대 초소가 매우 이상한 조화를 이룬다.이 해병대 초소는 그야말로 아주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의 장소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인가.

=원래 동해안에서 찍고 싶었다. 전방부대와 유사한 모델을 찾다가 화진포에서 찍으려 했는데 군에서 협조해주지 않아 못했다. 대안을 물색하다 섬은 군부대 관할이 아니라 경찰에서 관리하는 곳이라더라. 그래서 위도를 택했다. 와서 보면 알겠지만 여기는 대단히 아름답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들은 전부 군부대가 지키고 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아름다운 장소일수록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실제 촬영과정은 어땠나? 전작들과 달랐던 점이 있는지?

=촬영횟수는 23회나 24회 정도 됐다.달라진 점은 세트에 비용이 많이 들었다는 건데 2억원 정도를 들여 해안 초소 세트를 만들었다.배우들에게 촬영 전에 특수훈련을 3일간 시킨 것도 차이라면 차이다.배우들이 군인의 기본 느낌을 갖도록 훈련을 실시했고 촬영이 없을 때도 군복을 벗지 못하게 했다.빨리 찍었지만 노는 시간도 많았다. 쉬는 시간엔 군인들처럼 족구를 하면서 놀았다.아마 이런 과정이 화면에 어느정도는 반영됐으리라 생각한다.

남동철 기자